티모시 브룩(Brook·64)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북미를 중심으로 아시아 나라들을 연구하는 학자 8000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아시아연구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차기 회장이다.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겐 추리소설처럼 흥미로운 역사책을 쓰는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능지처참' '쾌락의 혼돈' '베르메르의 모자' '근대중국의 친일합작'과 하버드대 중국사 시리즈 원·명편 '곤경에 빠진 제국'은 국내에도 속속 번역됐다. '원사(元史)' '명사(明史)' 같은 중국 정사(正史)와 지방지·문집에 등장하는 '용(龍)'의 출현을 홍수나 가뭄 같은 이상기후로 해석해낸 '곤경에 빠진 제국'은 환경이 역사 변화에 미친 영향을 짚는 참신한 시각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 21일 고려대 해외 석학 강연차 방한한 브룩 교수를 만났다.

티모시 브룩 교수는 21일 인터뷰에서 “역사학자는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원·명과 청(淸) 편을 읽었다. '캠브리지 중국사'와 달리 딱딱한 개설서가 아니라 스토리가 담겨서 재미있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학부생이나 교양인이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써달라고 필자들에게 요청했다. 대신, 최신 연구 성과를 담아달라고 했다. '캠브리지 중국사'는 아무래도 대학원 박사과정 정도 전공자를 위한 책이다."

―예일대 석좌교수를 지낸 조너선 스펜스(79)의 책 '마테오리치, 기억의 궁전' '천안문' 등이 한국에서 많이 읽혔다. 스펜스 교수의 책은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그들이 살아낸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펜스 교수에게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그는 내 글쓰기의 모델이다. 1970년대 하버드대 대학원에 다닐 때, 앞으로 뭘 연구할까 고민하면서 만난 적 있다. 스펜스 교수는 그때도 친절하게 이것저것 일러줬다."

옥스퍼드대 첫 동양학 교수였던 존 셀던이 17세기 대학 보들리안 도서관에 기증한 지도. 2008년 도서관 서고에서 발견됐다. 남중국해가 가운데 있고, 해양 무역로를 선으로 이었다.

―'셀던의 지도'가 이번 강연의 주제다. 1608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는 전통 중국 지도와 달리 남중국해가 가운데 놓여 있다. 중국이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이 지도는 인도네시아에 살던 화교 무역상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 정부와는 상관없다. 지도에는 해상무역로가 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여기는 중국 배뿐 아니라 유럽, 동남아 선박들이 오갔다."

―중국은 정화(鄭和) 함대 원정 600주년을 10년 전부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중국이 최근 항공모함을 만들면서 남중국해뿐 아니라 바닷길에 대한 통제에 나서는 데 정화 원정을 활용하는 것 같다.

"600년 전에 아프리카까지 여행했다고 해서 연고권을 주장하는 게 합리적인가? 정화는 이 지역을 정복하지도 않았다."

브룩 교수는 2005년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근대 중국의 친일합작'에서 1937년부터 일본군 점령 통치에 협력한 중국인들의 상황을 다루면서 이렇게 썼다. '항일 전쟁 기간 대부분의 중국인은 실제 일본에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은 극소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하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이 나오자 중국 학자들은 내 책이 '협력자'들을 옹호한다고 비난했다. 나이 든 기성학자들이 그랬다. 젊은 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어로 번역이 안 됐다. 왕징웨이(汪精衛·일본 점령하 친일 정권) 정권은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 양쪽에서 비난받고 잊혔다. 협력자들을 무조건 비난해서는 역사에서 배울 수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고, 그들 역시 역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은 올해 광복 70주년이 됐는데, 지금도 친일파 청산을 얘기한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며 그 자식들을 비난한다.

"그런가?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연좌제를 부정한 근대법 체제에 어긋난다."

브룩 교수는 1937년 중일전쟁기 일어난 난징대학살에 대한 연구 논문도 썼다. 며칠 전 아베 일본 총리가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나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제 침략 전쟁을 반성한다면, 중국의 난징대학살 기념관이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나눔의 집' 같은 곳을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질문에 대한 브룩 교수의 답변은 이랬다. "아베 총리의 추모는 정치적 행위다. 역사학자는 그 행위에 대한 평가보다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주목한다. 한·중·일은 전쟁을 초래한 일본 제국주의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데도 그렇다. 유럽에선 독일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세 나라가 동의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공통 이해를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에둘러 갔지만 과거를 직시(直視)하자는 조언이었다.

☞티모시 브룩

티모시 브룩(64)은 캐나다 토론토 출신이다. 토론토대 영문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석·박사를 했다. 그는 “학부 때 영문학을 전공하다 선(禪)불교에 관심을 가져 중국사로 전공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토론토대 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전공은 명(明)대 사회·문화사, 태평양전쟁 때 일본의 중국 침략과 협력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