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현 특별취재부장

상고법원 설치 문제가 올해 법조계의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대법원이 오는 9월 출범을 목표로 추진 중인 상고법원 설치 법안은 지난 연말 판사 출신인 홍일표 의원이 국회 재적 의원 최소 과반(148명)을 넘는 여야 의원 168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상고법원 설치는 법원조직법 등 관련 법률을 손질하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사법 체계와 소송 제도의 틀이 통째로 바뀌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 교육 제도를 9월에 첫 학기를 시작하는 가을 학기제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당연히 꼼꼼하게 따져야 할 문제인데도, 공론의 장에선 배제된 느낌이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연간 상고 사건 3만6000건 가운데 99%를 상고법원에 떠넘기고, 대법원은 '필수적 심판 사건'을 포함해 300~500건 정도 심판하게 된다.

법조계의 논란과는 별개로, 헌법상 대법관 임명권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은 상고법원 설치를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가 궁금하다. 헌법에 따르면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대법관 임명권과 임명 동의권을 갖게 함으로써 사법부의 최종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분립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맡던 최종심 사건의 99%를 대법원장이 임명한 판사들로 구성된 상고법원이 맡을 경우, 이런 헌법상 취지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대법관 임명권을 통해 국민은 자신이 권한을 위임한 사람으로부터 최종심을 받는다는 신뢰가 확보돼야 재판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선출직이 아닌 대법원장이 다시 임명한 상고법원 판사가 최종심을 맡게 되면 국민주권을 재재위임(再再委任)하는 것이고, 국민주권의 원리는 희미해진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대법관은 국회가 동의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인데, 대법관 임명 동의권의 99%를 사실상 놓치는 셈이다. 그래서 상고법원 설치 주장은 사법권의 근거를 국민주권 바깥에 두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제1기 사법 정책 자문위원회에서 상고법원 방안을 논의했으나, '4심제와 같은 외양(外樣)이 강화되고 실제로 4심제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문제점을 분명히 지적한 바 있다(2010년 법원행정처 백서).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상고법원을 다시 추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밖에 없다.

여야 의원 가운데는 이런 법안의 배경이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서명한 이가 많았다.

한 의원은 "법원조직법을 손질한다니까 품앗이하듯이 서명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대법원 고위 간부가 협조를 요청해 서명했다가 3권분립 정신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철회했다"고 말했다.

검찰 백서에 따르면,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선거법 위반이나 부패 사건 등으로 여야 의원 70~80명가량이 재판을 받았다. 전체 의원의 3분의 1가량이 임기를 유지하느냐 마느냐, 교도소에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법정에 출석한 셈이다. 또 각 지방법원장은 대개 시도 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다. 법원의 잠재적 '인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의원 처지에선 법원의 협조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입법과 사법의 '불륜'이 맺어지는 것이다. 법원 관련 현안을 논의할 때마다 판사들과 의원들이 어울려 폭탄주를 돌리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다. 만나선 안 될 사람들끼리 만나고, 서로 얽히면 안 되는 사이인데도 얽혀서 돌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이 사법권 독립의 실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