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오전 신년기자회견을 갖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치적으로 가장 곤란한 처지에서 국민 앞에 서게 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이 다 돼가는데도 경제 회복 등 국민이 체감할 만한 국정 성과는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다수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 지난해 11월 불거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일 것이다.

파문 이후 드러난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권력 암투, 현 정부 장관·청와대 비서관이 증언한 문고리 비서관들의 국정·인사 개입 의혹,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의 진흙탕 싸움은 정부의 도덕성과 투명성(透明性)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왔다. 수십 건의 기밀을 포함해 청와대 공식 문서가 대량 유출(流出)된 것도 모자라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라는 비서실장 지시를 거부하는 항명(抗命)까지 벌였다. 청와대 내부 문화가 경직되고 권위적인 듯 보이지만 정작 제대로 된 리더십은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통령의 인식과 대응은 국민 기대와는 영 딴판이었다. 박 대통령은 파문 초기부터 '비선 의혹은 찌라시 수준의 터무니없는 소설'이라고 선을 그었고 검찰도 그 지침과 다르지 않은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청와대는 "잘못한 사람이 없으니 인사 조치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사람들까지도 "대통령의 불통(不通)과 소수 문고리 측근에 의지하는 폐쇄적 국정 운영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바깥 여론과 담을 쌓고 있으니 국정 지지도가 취임 이후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무원연금 개혁, 비(非)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노동 개혁 같은 중대한 구조 개혁을 앞두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선거가 없는 올해에 이 막중한 과제들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해왔다. 하나같이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개혁들이고, 국민이 합심해 밀어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국정 추진력을 훼손하고 있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오늘 회견을 국민의 믿음을 회복해 국정 정상화와 구조 개혁의 동력을 얻는 전기(轉機)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현 위기가 청와대 주장처럼 '권력에서 밀려난 몇 사람의 사심(私心)'이나 '사실 확인도 제대로 안 한 언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청와대에서 비롯됐다는 새로운 상황 인식부터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바탕 위에서 그동안의 국정·인사 스타일의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인적 쇄신과 시스템의 개선을 약속했으면 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주로 해왔다. 이번 회견에선 국민이 대통령으로부터 듣고 싶어하는 얘기에 중점을 둔다면 여기서부터 어렵게 꼬인 국정 난맥도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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