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8일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 소위 김영란법(法) 제정안을 의결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지 4년, 정부 법안이 국회로 넘어간 지 17개월 만이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공직자가 동일인으로부터 한 번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한다는 것이다. 형량은 3년 이하 징역이나 받은 액수의 5배 벌금형이다. 받은 금품이 100만원 미만인 경우엔 직무 관련성이 있는 때만 3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공직자의 가족이 직무와 관련해 한 번에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거나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연간 300만원 이상을 받으면 공직자 본인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현행 형법의 뇌물죄는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경우에만 처벌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공직자들이 스폰서(후원) 명목으로 금품이나 골프·술 접대를 받아도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영란법이 제정되면 공직자에 대한 값비싼 저녁 식사와 술자리, 골프 접대, 용돈, 전별금(餞別金), 명절 떡값, 휴가비 등 각종 금품 제공을 막을 수 있다. 경조사비도 함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앞으로 공직 사회에 뿌리 깊은 접대와 청탁 문화가 크게 바뀔 것이다.

애초 정부는 국회·법원·행정부 공무원과 정부 출자 공기업 임직원, 국공립학교 교직원만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 세금으로 운영되거나 국가 보조금을 받는 기관 직원들의 부패를 막자는 게 이 법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는 적용 대상을 유치원을 포함한 사립학교 교직원과 민간 언론사로까지 확대했다. 이대로 가면 적용 대상자가 공직자 본인과 그 가족을 합쳐 최대 2000만명이나 된다. 국민의 거의 절반이 잠재적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검찰·경찰의 힘이 커져 수사권이 남용될 가능성도 있다.

민간 부문의 비리는 기존 법으로 엄하게 처벌하면 된다. 국회는 처벌 대상자를 넓힌 것을 재검토하되 법안은 반드시 이번에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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