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9일 국회 운영위를 열어 청와대 비서실을 상대로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을 추궁할 예정이었지만 회의가 열릴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졌다. 청와대와 여당이 8일 "당연 출석 대상인 총무비서관 외에 민정수석과 나머지 문고리 비서관들도 불러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하자 야당이 회의 보이콧을 공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그 자리 사람들이 국회 상임위에 나온 전례가 없고, 검찰 수사로 '비선(袐線) 실세 의혹'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상태에서 야당의 요구는 부당한 정치 공세"라는 입장이다. 검찰 수사대로 '정윤회 문건'에 나타난 정씨와 청와대 비서관들의 회동(會同) 등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인 정씨와 문고리 비서관들의 국정 및 인사(人事) 개입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현 정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입에서 나온 '비선 실세'들의 문체부·경찰 인사 개입 주장이 사실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이번에 드러난 정씨와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씨 등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권력 암투(暗鬪) 실상도 규명돼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국회가 의혹의 당사자들을 불러내 국민이 궁금해하고 미심쩍어하는 부분을 묻고 따지는 건 여야(與野)를 떠나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야당이 요구하기 전에 여당이 먼저 문고리 비서관들을 국회로 불러내 증언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고리 비서관들 역시 국회에 나와서 스스로 결백을 입증하는 게 당당한 자세일 것이다. 국회 출석에 손사래를 치면 칠수록 국민의 의심만 키울 뿐이다.

이번처럼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이 일제히 편을 갈라서 치고받은 일 자체가 전례가 드물다. 그런 마당에 당·청이 '과거 관행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의 국회 출석에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궁색하다. 문고리 비서관들은 국회도 건드려선 안 될 '성역(聖域)'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비선 의혹'은 사법적 차원보다는 정치적 측면에서 책임을 추궁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타당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더더욱 국회가 정면으로 심도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여당 지도부는 이날도 "13일에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 안에 주요 민생 법안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며 야당의 협조를 다시 촉구했다. 그러나 여당이 끝내 문고리 비서관들에 대한 방호벽을 거둬들이지 않으면 야당과의 갈등 골이 깊어져 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게 되고 국정 운영의 차질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야당의 국정조사·특검 요구 공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문고리 비서관의 국회 출석을 막아야 할 이유가 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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