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0일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에서 수출 보험·보증 한도(限度)를 늘려 달라는 청탁을 받고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조계륭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모뉴엘은 수출 실적을 부풀려 무역보험공사의 수출 보증을 받은 뒤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사기 행각을 벌이다 자금난에 몰려 이달 초 파산 선고를 받았다. 무역보험공사는 모뉴엘의 허위 서류를 근거로 3200여억원의 보증을 서줬다가 모두 날릴 위기에 있다.

무역보험공사 임직원들은 너도나도 모뉴엘에서 뒷돈을 받았다. 전직 이사는 현직에 있을 때 수출 보험 한도를 늘려주고 뇌물을 받고는 퇴직한 뒤에도 후배 직원들에게 모뉴엘의 편의를 봐주도록 하겠다며 아내 통장으로 3년간 매달 500만원씩 받았다. 담당 부장도 6000여만원의 현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또 다른 전(前) 사장은 조선업체 STX로부터 아들 유학 비용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올 6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렇게 구석구석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에서 수출 보증 심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무역보험공사는 1992년 설립된 이후 작년까지 3조3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봤다. 그동안 국민 세금으로 넣어준 출연금 3조7000억원 대부분을 부실(不實)로 날린 셈이다.

수출업체들을 돕는 수출금융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함께 맡고 있다. 두 회사는 수출금융을 공급하는 업무에선 별 차이가 없지만 수출입은행은 기획재정부, 무역보험공사는 산업자원부에 소속돼 있다. 모뉴엘이 무역보험에서 보증을 받고 다시 수출입은행서도 1100여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처럼 두 곳에서 중복 혜택을 받는 회사들이 부지기수다. 이번에도 수출입은행의 부장과 팀장이 모뉴엘로부터 대출 청탁을 받고 각각 9000만원, 1억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하는 일이 겹치다 보니 비리가 만연한 것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같은 일을 하면서 모뉴엘 같은 회사들의 봉 노릇 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두 공기업을 통합하는 작업은 정권 교체 때마다 시도하다가 부처 간 영역 다툼에 밀려 그만두곤 했다. 이참에 두 기관을 통합하고 수출금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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