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심리 상담 받았어요. 아쉬움이 있으면 화도 내고 털어놓으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최운정(24·볼빅)은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이 우승 문턱까지 갔던 선수다. 31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에 10차례 들면서 상금 랭킹 10위(약 104만달러·11억5000만원)에 올랐다. 올해 데뷔 첫해 2승을 거둔 절친한 친구 이미림(14위)보다도 상금 랭킹이 높다. 그만큼 꾸준히 상위권에 올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승 기회를 많이 놓쳤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LPGA 투어에 데뷔한 최운정은 꾸준한 활약에도 아직까지 우승 타이틀이 없다. 올해도 ‘톱10’에 10차례 들었지만 번번이 우승 기회를 놓쳤다. 최운정은 “매년 성적이 좋아지고 있는 만큼 언젠가 우승할 때가 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최운정은 "저는 괜찮은데 남들이 그 괜찮다고 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하고, 저도 제 속마음이 궁금해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009년 LPGA 투어에 데뷔해 내년이면 7년째를 맞이한다. 2008년 1년간 LPGA 2부 투어에서 뛴 뒤 퀄리파잉 스쿨을 거쳤다. 그가 거의 우승할 뻔한 대회만 따져도 7개는 넘는다. 속상할 이야기를 좀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명랑한 말투로 이야기하자 함께 온 아버지 최지연(55)씨까지 웃었다. 2부 투어 시절부터 7년간 딸의 캐디로 골프백을 멘 아버지다.

아버지 최지연씨

아버지 최씨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매년 성적이 좋아지니까 우승할 때가 올 거라 믿고 있다"고 했다. 최운정은 2009년 상금 랭킹 86위를 시작으로 70위→35위→20위→17위→10위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저는 고등학교 때 운이 좋아서 주니어 상비군에 한 번 뽑힌 게 전부였어요. 얼떨결에 큰 대회를 우승해서 뽑혔던 거죠. 제 동기들보다 실력이 많이 부족했어요." "처음 미국 가서 레슨을 받는데 스윙 동영상을 본 코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열심히 했죠. 결국 LPGA 투어에 데뷔했는데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같은 어마어마한 선배들과 함께 플레이하게 됐으니 꿈인가 싶었죠."

"올해 2월에 호주여자오픈에서 카리 웹에게 역전패를 했지만 웹이 나보다 더 절실했구나. 어떻게 나이 마흔에 저렇게 부드러운 스윙을 할 수 있을까 감탄했어요. 그렇게 아쉽지 않았어요." 이렇게 남 이야기 하듯 말했다. 최운정을 만난다니 "정말 성실한데 약간 '4차원'이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라고 귀띔했던 투어 선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LPGA에서 연습량 많기로 소문난 한국 선수 중에서도 가장 독종으로 꼽힌다. "지독하게 몰아붙이는 선생님이 좋다"고 했다. "동계 훈련 때는 6년째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는데 하루 두세 시간씩 해요. 아침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두 손으로 하나씩 들어야 할 정도로 해요. 그래도 그게 좋아요." 그는 올해 대회 중에도 라운드를 마치면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시간씩 해도 좋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 최씨는 7년 전 딸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우승할 때까지 골프백을 메겠다'는 게 부녀의 무언의 약속이었지만 올해 11월 미즈노 클래식을 앞두고 "딸이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7년간 메던 골프백을 처음 전문 캐디에게 넘겼다. 하지만 딸의 성화로 한 달 뒤에 열린 한·일 골프대항전 싱글매치플레이에서 다시 딸의 캐디가 됐다. 최운정은 "제가 한·일전 대표가 되는 게 목표 중 하나였는데 처음 나선 대회에서 질 수 없잖아요. 아빠하고 해야 최고로 잘할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최운정은 "골프 선수가 돼서 정말 자랑스럽다"며 "나이 스물넷에 이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승부에 강한 선수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최운정은 독특한 느낌을 줬다. 승부에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떤 고비도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