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린 데는 과거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잔존 세력이 통진당을 장악했고, 이들이 여전히 과거처럼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혁당 출신은 전체 통진당 당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통진당 국회의원, 당3역, 최고위원 등에 올라 당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고, 여전히 폭력 혁명을 바탕으로 한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추구하는 이상 정당 해산이 불가피하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통진당은 제2의 민혁당"

헌재는 통진당의 '주도 세력'으로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부산울산연합의 주요 구성원들과, 이들과 이념 성향을 같이한 당원들로 규정했다. 경기동부연합 등은 1990년대 초 결성된 재야운동단체인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이다. 전국연합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기동부연합 등의 일부 구성원은 개인 자격으로 민노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들은 이후 통진당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을 이끌었고, 두 차례 분당(分黨) 과정을 거치면서 견제 세력들이 탈당하자 당을 주도해왔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통진당 前의원들 "국가 상대로 소송 제기할 것" -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전직 의원들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의원직 상실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국가를 상대로‘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김재연·이상규·오병윤·김미희 전 의원.

헌재는 경기동부연합 등 통진당 주도 세력의 뿌리를 민혁당에 뒀다. 민혁당은 1980년대 주사파(主思派) 대부로 불린 김영환씨가 만든 지하혁명조직으로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민혁당과 관련 조직의 구성원들이 경기동부연합 등으로 옮아갔고, 이들이 통진당 내에서 세력을 키우면서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민혁당 조직원들이 경기동부연합 등에서 활동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특히 민혁당이 경기동부연합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은 이석기가 주도한 내란 관련 회합(RO 모임 지칭) 참석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통진당 주도세력은 민혁당, 영남위원회(민혁당의 지역조직), 실천연대, 한청년단체협의회(이하 이적단체), 일심회(간첩단 사건)와 연루된 인물들"이라며 "이들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북한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해 활동해왔다"고 덧붙였다. 헌재 관계자는 "통진당과 민혁당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을 종합하면 헌재가 통진당을 사실상 '제2의 민혁당'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당직자 과거 보니…

헌재는 결정문에서 통진당 핵심 당직자들의 과거 전력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당 3역, 최고위원들 대부분이 민혁당이나 민혁당 지원조직, 이석기 RO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어서 통진당과 이들을 분리해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석기·이상규·김미희 전 의원은 모두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민혁당 관련 조직원이었다. 헌재는 "이석기 전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 이상규 전 의원은 이석기의 지도를 받으면서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을 담당했고, 김미희 전 의원은 민혁당이 지도 관리한 단체인 터사랑청년회 회원이었다"고 밝혔다. 김재연 전 의원은 이석기 내란 관련 회합에 참석해 스스로 경기동부연합 일원으로 지칭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오병윤 전 의원은 민혁당 조직원이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한 광주전남연합 출신으로 이적표현물인 '김일성 선집'을 소지했던 것으로 헌재는 밝혔다.

당 3역에는 민혁당 조직원이던 이상규 전 의원이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이 전 의원은 진보정책연구원장도 겸했다. 안동섭 전 사무총장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이석기 내란 사건 관련 조직에서 주체사상을 학습했다. 홍성규 전 대변인은 민혁당이 지도 관리하던 서울대 애국청년선봉대 대장으로 활동했고, RO 모임에도 참석했다.

유선희·민병렬 전 최고위원은 민혁당 내지 민혁당 하부 활동가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김승교 전 최고위원은 이적단체인 실천연대 상임대표를 맡았고, 이적단체 한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통진당 강령 제정을 주도한 박경순 전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민혁당 조직원이었고, 최기영 전 정책기획실장은 일심회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았다.

헌재는 "통진당 주도 세력들의 형성 과정이나 대북(對北) 자세, 활동 전력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