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사(私)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EBS 영어 교재에서 사용되는 영어 어휘 숫자를 현행 5668개에서 3000개 안팎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EBS 수학 교재는 현재 8권인 것을 5권으로 줄이고 교재에 실린 문항 수도 2520개에서 2000개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EBS 교재는 수능(修能)에 연계돼 있어 결국 수능 문제도 함께 쉬워질 전망이다.

올해 수능 채점 결과를 보면 영어 만점자가 응시생의 3.37%였고, 수학B 만점자 비율은 4.3%였다. 이 두 과목에선 한 문제만 삐끗해도 1등급을 받기 힘들어 '역대 최고의 물수능'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런 마당에 교육부는 더 쉬운 교재를 만들고 더 쉬운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선 학교생활기록부·수능·면접의 세 가지 자료를 갖고 신입생을 뽑는다. 이 중 학교생활기록부는 기록 자체를 믿기 힘들다. 올봄 감사원이 205개 고교 학교생활기록부를 점검해봤더니 고3 학생부 내용을 입시에 유리하게 고쳐준 사례가 45개교에서 217건 적발됐다. 그나마 믿을 만했던 것이 수능이었는데 수능의 변별력(辨別力)이 사라지면 상위권 대학들은 면접 위주로 신입생을 뽑겠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심층 면접은 과거 대학 본고사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학원들은 '본고사 대비반(班)' 간판을 내걸고 수험생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사교육을 억제해 학생과 학부모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교육 정책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그에 앞서 국민 전체의 지적(知的) 수준을 높이고 창의력 있는 미래 세대를 키우는 과제는 더 놓칠 수 없는 교육 본질의 목표다. 때로 두 교육 목표가 상충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교육 당국은 대한민국 미래와 대한민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정책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교육부는 학생들 실력이야 어떻게 되든 학습 분량을 줄여 사교육을 잡겠다는 '교육 포퓰리즘'의 외길로만 내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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