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2004년 3월 대한항공 측에 처남 김모씨의 취직을 청탁해 성사시켰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김씨가 문 위원장 부부를 상대로 12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의 판결문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문 위원장은 부동산 문제로 처남이 손해를 물어내라고 요구하자 대한항공에 처남의 일자리를 부탁했고, 대한항공은 미국에 있는 거래 회사의 고문 자리를 알선해 줬다. 김씨는 이 회사에서 2012년까지 모두 74만7000달러(8억2000만여원)를 받았다. 법원은 그러나 "김씨가 회사에서 직접 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문 위원장은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당 대변인을 통해 "(대한항공 회장 측에) 직접 부탁하진 않았으며 당시 보좌관이 대한항공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밝혔다. "(청탁했던 때는) 2004년 2월 청와대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 야인(野人) 시절이었다"고도 했다. 청탁은 했어도 권력을 이용해 기업의 팔을 비튼 건 아니라는 취지다.

그러나 문 위원장 측이 대한항공을 찾아간 것은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그만둔 지 불과 한 달 뒤였다. 당시 그는 청와대에서 나왔을 뿐 대통령 정치특보에 집권당 고문 직책까지 갖고 있었다. 그런 정권 실세의 부탁을 기업이 딱 잘라 거절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김씨가 아무 일을 하지 않고도 매달 800만원 넘는 돈을 받은 것을 보면 금방 짐작이 가고 남는다. 뇌물인지 아닌지 굳이 법조문을 따져보지 않아도 문 위원장 측이 처남에게 진 빚을 대한항공 거래사가 대신 갚아준 셈이다.

이쯤 되면 문 위원장은 국민 앞에 전후 과정을 설명하고 사과할 것이 있으면 머리를 조아리는 게 마땅하다. 그게 제1 야당 대표이자 5선(選)의원으로서의 지위에 걸맞은 처신이다. 그런데도 문 위원장은 "돈으로 얽힌 집안 얘기를 하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당 대변인을 내세워 자기 입장을 대신 설명토록 했다. 화살을 피하려는 듯 본인은 입을 닫은 채 남을 앞세워 놓고 국민에게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문 위원장은 대한항공 거래사가 8억원이 넘는 돈을 처남에게 지불한 사실도 "이번 소송을 통해서야 알았다"고 얼버무렸다. 그렇다고 대한항공 거래사가 사실상 자신의 빚을 갚아주는 데 들인 그 돈을 뒤늦게나마 청산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정치인의 부채(負債)는 기업이 대신 상환해 주는 게 당연하다는 말인가.

야당 사람들도 모두 문 위원장 일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만약 지금 정권의 실세가 그랬다면 야당이 가만있겠는가. 사과와 인책(引責)을 요구하고 특검이나 국정조사까지 들고나왔을 게 뻔하다. 이런 공범(共犯) 의식으로 똘똘 뭉친 야당의 도덕성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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