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보통 작가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원래 만나기로 한 날은 바로 전날이었지만 만화의 날 시상식 일정이 생겼다며 다음 날로 미룬 터였다. '암환자'를 발음 나는 대로 기재한 웹툰 는 제14회 만화의 날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을 안긴 김보통 작가의 신작, 그리고 첫 번째 작품이다.

김보통 작가는 몇 년 전 소리 소문 없이 만화계에 등장했다. 그림을 전공하지도, 대학 졸업 후 곧장 만화가의 길을 걸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재미 삼아 자신의 트위터에 끼적이던 만화는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내 올레 웹툰 연재 작가가 되었고 단행본까지 나오게 된 것.

무엇보다 그의 첫 작품 는 실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3~4년 전에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저는 회사원이었고 일 핑계로 늘 아버지 곁에 있어드리지도 못했죠. 한번은 아버지가 종부성사(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주는 가톨릭의 영세)를 받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힘든 시절 다 보내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느냐'고요. 아버지의 그 말이 제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어요."

그전까지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작가는 아버지의 투병과 임종을 계기로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아버지가 놓친 바로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였다.

"회사 다니면 동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이런 인생으로는 자서전도 못 쓴다'고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회식하고, 퇴근하면 잠들었다, 일어나면 또 출근하고. 진짜 이런 인생으로는 자서전도 쓸 게 없는 거예요. 웃기기는 한데 너무 슬픈 말이죠. 그래서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리고 한 5~6개월을 놀았죠."

실컷 잠도 자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녀왔다. 나름 진지한 진로 탐색의 시간이 이어졌지만, 좀처럼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무렵 SNS 바람이 불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니 트위터라는 게 있더라고요. 호기심에 시작은 했는데 (트위터상에서)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재미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뭔가를 찍어 올리기도 하는데 저는 그럴 것이 없었죠. 그때 마침 책상 위의 노트랑 샤프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걸로 프로필 사진을 그려서 찍어 올렸죠. 물론 실력은 처참했어요."(웃음)

그렇게 만화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취미 삼아, 연습 삼아 그려 올린 만화가 2~3달 동안 무려 500여 컷. 참고로 "처참하고 형편없는 실력"이라는 작가의 자책은 과도한 겸손 정도로만 받아들이시길. 한때 예고 진학을 꿈꾸기도 했을 만큼 그는 원래 그림을 좋아한 학생이기도 했다.

"그릴 줄 모르니까 심플하게밖에 못 그렸어요. 뒤로 갈수록 좀 더 사람 같아져요.(웃음) 그래도 점 하나 찍을 때도 노력을 많이 했어요. 입 꼬리를 좀 더 올릴까 말까, 하면서요. 그림을 잘 그리면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을 했을 텐데 그걸 못 했죠."

보면 알겠지만 그의 눈, 코, 입은 지극히 기능적인 면에만 충실하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미묘한 감정을 충분히 담아냄은 물론 작화가 담백하고 깔끔한 게 장점이다. 참고로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처음 그릴 때부터 독자분들께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절대 슬프게 안 끝난다고요. 저는 암 환자를 소재로 비극적으로 끝내는 내용을 좋아하지 않아요. 분명히 해피엔딩이 될 겁니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의 주인공은 20대 중반의 남성 암 환자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이고 여자 친구도 있는 그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암이라는 한 글자가 끼어든다. 작가는 암 환자였던 아버지를 모티브로 하되 주인공의 나이는 훨씬 어린 20대로 바꾸어 설정했다.

"처음에는 아버지 나이대로 하려고 했어요. 근데 제가 전혀 (심중을) 짐작할 수 없는 세대라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아이로 설정하기엔 그 역시 제가 순수함을 잃을 대로 잃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판단했고요.(웃음) 그럼 저보단 좀 어리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완전히 성장하지도 않은, 한창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에 해당하는 나이대로 설정하자. 동시에 '아버지가 이 나이였다면' 하고 가정하며 그렸어요."

그래서인지 대사 중에는 짐작건대, 암 환자의 실상을 십분 반영했으리라 생각되는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고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이 남아 있는데?"라고 되묻는다거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전제가 흔들리면 삶에 대한 의지도 같이 흔들린다. (중략) 그럼에도 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같은 대사들은 깊은 울림으로 돌아온다. 이 외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암 환자 캐릭터들은 감동을 쥐어짜내는 대신 담담하게 읊조리는 말 한마디로 독자를 감동시킨다.

"이 만화를 그리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이게 혹시 암 환자를 동정하는 만화로 보이진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기존의 매체에서 다뤘던 것처럼 암 환자를 불쌍한 존재, 눈물샘을 자극하는 존재로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근데 다행스럽게도 암 환자분들이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많이 봐주세요."

또 하나 연재에 큰 힘이 되는 것은 '다음 회를 기다리는' 암 환자 독자들이다.

"연재를 하다 보면 간혹 (만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도 스물여섯, 스물일곱이라고 밝히는 암 환자분들이 메일을 보내오세요. '조만간 5차 항암에 들어간다', '책은 언제 나오나?', '만화는 언제까지 연재가 되나' 물어봐주시거든요. 그럼 오래 연재할 거니까 완결까지 꼭 보셔야 된다고 얘기해드려요. 그분들도 그때까지 힘을 내겠다고 하시고요. 그분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들어도 열심히 연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힘이 되어주는 만화 한 컷, 한 회를 연재한다는 것, 그런 만화가로서의 삶은 꽤 괜찮은 아니, 성공한 삶이 분명하다.

"어제가 '제14회 만화의 날' 선정작 수상하는 날이었는데, 아마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셨다면 거기에 오셔서 제 귓방망이 한 대 때려가지고 끌고 가셨을 거예요.(웃음) 어머니도 아직까지는 '회사에 다녔더라면 돈도 지금보다 더 잘 벌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세요. 그래도 제 만화를 챙겨 보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독자들 덕분에 힘이 나죠."

김보통 작가와 예상보다 길어진 인터뷰를 마쳤다. 참고로 한 번도 매체에 공개한 적 없는 그의 얼굴은 그림으로 대체한다. "만화에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자랑스러운 외모도 아니고요."(웃음)라며 멋쩍은 웃음으로 대신하는 작가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1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