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슈턴 카터(60) 전 국방부 부장관이 최근 사임한 척 헤이글 국방장관 후임으로 내정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만간 내정 사실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이 2일 보도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고, 국방부 업무 방식과 현안 등을 꿰뚫고 있다"고 말해 곧 지명할 것임을 시사했다.

카터 전 부장관은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국방부 2인자로 일했다. 예산과 무기 조달 등에서 뛰어난 실무 능력을 갖춘 '일벌레'로 통한다. 군 출신은 아니지만 펜타곤(국방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카터가 상원 인준을 받으면, 징병제 폐지 이후 세대에서 처음으로 국방장관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은 1973년 베트남전이 끝나면서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꿨다. 카터는 1976년까지 대학(예일대)을 다녀 징병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애슈턴 美국방 내정자와 오바마 - 미국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애슈턴 카터(오른쪽) 전(前) 미 국방부 부장관이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왼쪽) 미 대통령이 주최한 각료회의에 참석한 모습.

옥스퍼드대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초기인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국방부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로 일했다. 당시 제1차 북핵 위기가 터지자 북한을 방문해 핵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경험 때문에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 등은 "카터가 폐쇄적이고 위험한 북한 정권을 아주 잘 알고 있다"며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차 북핵 위기 때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 폭격을 주장했던 국방부 강경 그룹 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에는 윌리엄 페리 전 대북조정관과 함께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정밀 타격을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하고 하와이까지 날릴 수 있는 대포동 미사일 등을 발사 실험하려고 준비한다면 이를 공격해 파괴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1년 9월에 열렸던 국방부 부장관 인준 청문회에서 카터는 "북한 미사일과 대량살상 무기는 동맹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가진 대규모 재래식 전력과 우라늄 농축, 대량살상 무기 프로그램 등을 통한 비대칭전력 확충 등은 국제사회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카터는 "북한이 한국을 두 차례나 공격한 것은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동맹국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비상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는 국방 예산 감축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해 3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미국이 국방비를 줄이더라도 아·태 지역 중시 전략과 한·미 동맹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카터가 장관으로 취임하더라도 북한보다는 이슬람국가(IS) 퇴치 전략 마련, 국방 예산 개혁 등을 우선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북한에 눈을 돌리기도 전에 임기가 끝날 수 있다. 헤이글 전 장관이 백악관 참모들과의 갈등 때문에 사실상 쫓겨났는데, 카터도 그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부장관에서 물러날 때도 일부 갈등설이 있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로 활동하다 최근 스탠퍼드대로 자리를 옮긴 그는 민주당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도 친분이 깊다. 그러나 공화당 출신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2008년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의 참모로도 활동했다. 양당을 뛰어넘는 초당파적 행보로 상원 인준은 무난할 것이란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