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1901년 제정된 이래 세계 과학자들의 꿈이었다. 이 '꿈의 상징'인 노벨상 메달을 생전에 경매에 부치는 수상자가 최초로 나타났다. 바로 전 세계 과학 교과서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인물'로 등장하는 미국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86·사진)이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그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이런 왓슨이 메달을 파는 이유는 뭘까. 그가 7년간 몰락한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는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나는 (7년간)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수입 대부분도 잃었다"며 "이번 경매를 통해 사회적으로 재기하고 싶다"고 했다.

추락은 영국 방문 중이었던 2007년 현지 언론 선데이타임스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나는 아프리카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프리카) 정책이 흑인이 우리랑 비슷한 지능을 보유했다는 데 근거했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평등하길 원하지만,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

'백인 우월주의'가 담긴 인터뷰가 공개되자 영국과 미국에서 큰 반발이 일었다. 왓슨은 이전에도 "산모 뜻에 따라 동성애 성향의 태아를 낙태할 수 있다" "멜라닌 색소가 많을수록 성욕이 강하다" 등의 설화(舌禍)를 자주 일으켰다. 하지만 다(多)인종 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근간을 건드리는 인종 차별 발언은 이전과 다른 거센 포화를 맞았다.

인터뷰 공개 직후부터 현지 강연, 출판 기념회가 줄줄이 취소됐다. 켄 리빙스턴 당시 런던 시장은 "유전공학을 악용한 근거 없는 인종주의"라고 비난했고, 학계에서도 "피부색과 지능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그런 유전 정보도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왓슨은 "내가 믿는 진실을 밝히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결국 쫓기듯이 고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의 반응은 더 냉랭했다. 40년 가까이 소장으로 근무했던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CSHL)에서 강제 사임됐다. 대중 강연도 끊기고, 재직 중이던 기업의 이사회에서도 쫓겨났다. 정작 왓슨의 유전자 검사 결과 증조부모 대에 흑인 조상이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왓슨은 "(지난 7년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며 "지능에 대한 발언이 크게 기사화되리라 생각하지 못한 내가 어리석었다(stupid)"고 했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왓슨(왼쪽)과 동료 프랜시스 크릭이 연구실에서 DNA 모형을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 크릭은 2004년 사망했다.

이번 메달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회사 크리스티 측은 "위인들의 발견은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을 초월하는 것"이라며 "왓슨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고 밝혔다. 왓슨의 메달은 4일 미국 뉴욕에서 경매에 부쳐지며, 낙찰 가격은 250만~350만달러(27억7100만~38억7900만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왓슨은 '메달 값'으로 "나를 돌봐줬던 모교 미국 시카고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기부금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