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성(性)추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대 수리과학부 K 교수가 2004년부터 10년 동안 성추행한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22명이나 된다고 'K 교수 사건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K 교수는 학생들을 저녁 식사 자리로 불러내 술을 곁들여 먹이면서 신체 접촉을 시도하고 연구실로 따로 불러 성추행도 했다고 한다. 학생이 거부하면 "예뻐하고 잘해줬는데 무례하게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니 기가 차다"며 화를 냈다. K 교수는 지난 7월 세계수학자대회 집행위원으로 행사를 준비하면서 인턴 직원으로 일하던 여대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K 교수가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해온 게 사실이라면 그 자체도 놀랍지만 이런 일이 10년 동안 덮여 있었다는 게 더 놀랍다. 대책위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갑을(甲乙) 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들로선 취업에 반영되는 학점을 교수가 결정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하는 경우에도 교수 손에 평생 운명이 맡겨지게 돼 있어 감히 교수에게 대항할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전국 13개 대학 대학원생 2354명을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교수한테 성희롱·성추행·언어폭력 등을 당했다는 응답자가 45.5%나 됐다. 그러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65.3%는 참고 넘어갔다고 했다. 이유는 '불이익을 받을까 봐 두렵다'거나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각각 절반쯤이었다. 학생들이 교수한테 당해도 꼼짝 못하는 실상을 보여준다.

K 교수는 26일 사표를 냈고 학교는 그를 면직 처분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K 교수가 면직되면 서울대 교원이 아니라서 더 이상 진상 조사를 할 수도 없고 징계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미적거렸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선 사표를 냈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할 수 없다고 발을 빼고 있다. 검찰도 그동안 내부에서 성추행 사건이 터져도 쉬쉬하고 덮어주곤 했다. 그런 일이 겹치면서 최근에는 전·현직, 직위 고하(高下)를 가리지 않고 검찰 주변에서 성(性) 추태가 그치지 않고 있다. 서울대가 그런 검찰의 뒤를 따르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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