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2009년 '가난의 대물림'이 어린 시절 부모 등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부유층 아이보다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해 학력 격차가 벌어지고, 이것이 이들의 직업 등에도 영향을 미쳐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통상적인 인식과 다른 결론이다.

이 연구는 백인 남녀 195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평생 받는 '스트레스지수'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중산층 가정 출신보다 이 지수가 더 높았다. 언어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연관된 '작업 기억(working memory)'도 빈곤층 출신(8.5건)이 중산층 출신(9.4건)보다 낮았다.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는 연세대 김주환 교수는 "이 연구는 중산층과 빈곤층 출신들의 학업 성취도 등의 차이는 사교육 기회나 공부에 투자한 시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는 부모의 경제력 차이보다는 부모가 얼마나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적게 주고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느끼는 공부 스트레스가 과도하고 이런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시기에 주어진다는 게 더 큰 문제"며 "이는 부유층 가정에서 더 심할 수 있어 계층에 관계없이 고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런 '생애 초기 스트레스(early life stress)'가 아이들로 하여금 부정적 정서를 갖게 해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역경을 뚫고 무엇인가를 이뤄내려는 의지와 능력이 약한 청소년이나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공부에 대한 압박이나 부모의 폭언·학대, 부부간의 불화 등은 청소년들이 '마음의 근력(筋力)'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청소년상담개발복지원에 상담 신청을 한 모 미술대학 졸업반 박모(23·여)씨도 이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다.

박씨의 부모는 둘 다 중학교 졸업 학력으로 현재 작은 식당을 운영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어려운 형편에 대학까지 보내준 부모님이 고맙지만, TV에서 요즘 20대들이 힘겨워하고 자살률도 높다는 보도가 나와도 '우리 집하곤 상관없는 배부른 이야기'라며 내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관심이 없다"며 "부모님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박씨를 상담한 유혜란 상담원은 "생계에 바쁜 부모로부터 정서적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유년·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정서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