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주민투표를 거쳐 우크라이나를 떠나 러시아로 병합된 크림반도. 압도적 찬성으로 스스로 러시아의 품으로 들어간 지 8개월이 지난 지금 크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18일 "러시아의 후원을 받는 크림 공화국 정부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알짜 기업들을 국유화시키고 있다"며 "신(新)볼셰비키(옛 소련 공산당의 별칭) 독재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크림 공화국 의회는 지난 12일 '사회적·문화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개인 자산은 국유화할 수 있다'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바로 이날 크림의 최대 제과·제빵업체 '크림클렙'이 오너의 손을 떠나 국영화됐다. 러시아 현지 매체는 그 배경에 대해 "크림클렙 소유주가 돈세탁을 하고, 우크라이나의 반(反)러시아 세력을 지원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크림 최대 민간 조선소 '자리프'도 난입한 친(親)러시아 민병대의 강요로 경영권을 모스크바의 한 기업으로 넘기고 말았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조선업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재벌이 소유한 대규모 리조트 단지도 "인근 공원에 대한 시민의 접근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압류됐다.

크림 정부가 최근 빠른 속도로 국유화를 진행하는 건 "재정 적자 극복을 위해서"라고 한다. 관광산업 등으로 '알토란'으로 통했던 크림이 정작 러시아 합병 후 경기가 급전직하하면서 세수(稅收)가 줄었기 때문이다. 원래 크림반도는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흑해의 풍광으로 세계에서 연간 650만명이 방문하는 인기 관광지였다. 관광 수익이 지역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올 한 해 관광객은 350만명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정부가 관광산업을 살려보겠다고 항공·숙박 패키지에 보조금을 쏟아붓고, 반강제로 공무원들을 크림반도로 휴가 보내고 있다"며 "하지만 정세 불안으로 인한 관광객 급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크라이나 본토인은 물론, 서구 관광객들도 분쟁 지역처럼 인식된 크림에 놀러 오기를 꺼린 탓이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국제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의 일부가 됐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또 크림의 정부 관료 등이 '자금줄'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 측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공·사유를 가리지 않고 재산을 자진 헌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크림 정부가 고급 별장 수 채와, 450㎢에 달하는 크림 반도 최대 자연보호 구역, 고급 스파, 어린이 캠핑장, 유서 깊은 와이너리 등을 무상으로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의 자산관리국으로 넘겼다"고 보도했다.

과거 스탈린이 즐겨 머물렀던 유스포프 궁전, 유명한 온천 마을의 별장 두 채, 사냥 오두막집, 리조트 6채 등도 푸틴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크렘린으로 넘어갔다. 제정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세계 최고를 목표로 1894년 건설한 '차르의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마산드라'도 러시아에서 운영 중이다.

국유화된 크림의 기업·재산 운영과 수익 관리는 러시아 본토의 국영기업들이 그렇듯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자체 산업과 소득 기반이 붕괴한 크림 공화국의 중앙정부 재정 의존도는 최근 75%까지 치솟았다. 자연스레 '푸틴이 지갑을 열어 돈을 푸는 모양새'가 되고, 경제·정치적 의존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중앙통제식 경제가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러시아 전문매체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는 크림 합병 당시 10년간 480억달러를 투자해 이 지역에 도로·공항 등 기간시설을 건설해주기로 했다"며 "하지만 서방 제제로 러시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선 지금 크림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