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이뤄야 한다는 것은 제 신념입니다. 정치적 타협과 정책적 묘미를 살리면 얼마든지 병행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18일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에 취임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65)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을 19일 인천 송도 쉐라톤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앞으로 창조 경제와 녹색 성장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고, 선진국에 개도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GGGI 설립을 구상할 때부터 '녹색 성장'을 전적으로 지지해왔습니다. 창조 경제와 녹색 성장은 어느 나라든 꼭 필요한 국가적 어젠다이기 때문에 의장직을 맡아달라는 GGGI 제의가 왔을 때,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지난 10월 퇴임을 앞둔 그에게 여러 국제기구가 고위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GGGI를 택했다.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무궁화 대훈장을 받았다. 오후에는 ‘창조 경제와 녹색 성장의 결합’을 주제로 GGGI가 주최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22개 회원국을 둔 GGGI는 개도국의 녹색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기구다. 친한파(親韓派)인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본부에서 임기 2년의 차기 GGGI 의장으로 추대됐고, 18일 인천에서 열린 GGGI 이사회에서 신임 의장으로 공식 선출됐다.

그가 GGGI 의장직을 수락한 배경에는 우리 전·현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정부 시절, 그의 장인은 초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1974~1978년)를 지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197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길에 한국에 들러 당시 대사의 장녀인 크리스티아니 헤라와티 여사를 만났고, 이후 결혼에 이르렀다. 그는 "요즘 아내가 다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일 년에 서너 번은 한국을 찾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지금도 서로 형제라고 부를 만큼 가깝다.

동(東)자바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 육사를 졸업한 그는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그리고 인도네시아 보고르 농대에서 농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어에 능하고 국제 감각도 뛰어나 '생각하는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2004년 첫 직선제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인도네시아의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 연임에 성공했다.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성장·환경 양측 논리를 모두 수용해 공생(共生) 방안을 찾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기업과 시민단체 등 이익집단 간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수없이 당사자들을 만나 협의하고 협상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다 보니 오염물 정화 설비를 갖추고, 친환경 공정을 도입하는 회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적절한 정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성장을 이룩하고, 환경도 지켜가는 모범 국가입니다. 특히 환경에 부담되는 제조업에만 머물지 않고 교육, IT, 서비스업 등 다양한 방면에서 녹색 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창조 경제'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한국을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GGGI 의장을 맡았습니다."

세계 넷째 인구(2억5000만명) 대국이며 최대의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유도요노 대통령 재임 중인 2012년 G20 국가 가운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성장률(6.3%)을 기록했다. 2009년을 제외한 지난 10년간 매년 5% 이상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30년을 집권했던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고, 이후 6년간 대통령이 세 번 바뀌며 부정부패 스캔들과 정치적 혼란에 시달렸던 예전의 인도네시아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1997년 위기 때 해외 시장에만 의존하는 경제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내수 시장 강화에 힘을 쏟았고, 중산층이 늘면서 꾸준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장의 바탕인 투자 환경 개선, 부패 척결, 규제 완화, 투명한 기업 환경 조성에 노력했다"면서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성과가 있었고, 후임 대통령도 계속 힘써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서방 국가들과는 다른 전략을 택했다고 했다. "서구의 긴축 재정 정책은 우리에겐 맞지 않아요.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돈줄을 틀어쥐면 국민들 고통이 너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인센티브를 줬고, 빈곤층에는 현금을 나눠줘 생필품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그게 나은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