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8일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2명의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면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親書)'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서 말하는 친서란 무엇일까? 대통령·국왕·총리 등 국가 정상이 상대국 수반에게 보내는 문서를 이르는 말이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선 과거 왕조 시대에 쓰던 친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편지를 말한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영·미 언론은 서신(letter) 또는 개인 서신(personal letter)이라고 표현했다. 로마 교황청에선 교황이 직접 서명한 편지를 오토그래프 레터(autograph letter)라고 부르곤 한다.

'오바마 친서'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리는 까닭은 번역상 어감 차이 탓이 크다. 외교부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보낸 친서 역시 영어로 개인 서신(personal letter)이라고 옮긴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친서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먼저 정상의 취임·퇴임·유고 등 신상 변동과 관련해 축하나 유감, 애도 등을 표하는 의례적 기능을 할 때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3년 2월 취임 당시 세계 각국 정상으로부터 취임 축하 친서를 받았다.

친서가 효력을 발휘하는 때는 바로 각종 외교 문제에서 정상의 의지를 보여주는 경우다.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간다는 사실은 대통령의 관심이 그만큼 큼을 의미한다. 클래퍼 DNI 국장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은 미국과 물밑 협상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를 보낸다는 조건으로 억류 미국인 석방에 합의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이 북한에 먼저 손을 내미는 듯 보이는 친서라는 '명분'을 내주고 자국민 석방이라는 '실리'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실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1일 "(미국이) 최고영도자(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낸 것을 진지한 대화의 새로운 기점으로 삼으려 한다면 조선 측은 호응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미국은 친서의 의미가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 시각) CNN에 출연해 "짧은 서한만 북한에 전달한 뒤 미국인들을 데리고 나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친서엔 정해진 형식이 없다"고 말한다. 편지를 받는 국가 언어로 작성하는 것이 관례지만 자국어로 작성될 때도 많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대통령 기록관에는 외국 정상들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취임식 때 보낸 축하 친서가 있다. 이를 살펴보면 영어·러시아어·불어 등 친서를 보낸 나라의 언어로 쓰인 것이 많다.

친서의 무게는 이를 전달하는 특사(特使)의 위상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은 대북 국면 전환 때마다 지미 카터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했다. 이번에도 북한에선 이들 전직 대통령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사 활동에 열의를 보여 '퇴직 후 오히려 더 활발한 전직 대통령'이라 불리는 카터는 지난 10월 구순을 맞고도 특사 파견을 자청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8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방중해 후진타오 국가 주석을 예방하고 이 당선인 친서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