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199일째 되는 날인 10월 31일의 '세월호법 합의'는 대통령의 사과와 야당 원내대표 교체, 2차례의 여야 합의 파기 등 숱한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거친 끝에 나온 산물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수습 방안은 크게 진상 조사와 안전 시스템 재구축의 두 관점에서 논란을 벌여왔다. 이번 여야 합의는 '진상 조사는 유족 뜻 존중, 안전시스템은 정부 구도대로'라는 타협으로 성사됐다.

세월호 관련 법은 지난 5월 8일 새정치연합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가 여당에 협상을 제의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달 19일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와 맞물리면서 특별법 협상은 정치적 이슈로 변질됐고 협상도 꼬여갔다.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46일간 단식을 하고 야당 대선 후보였던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이 가세하면서,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갈리기도 했다. 여야가 어렵게 마련한 1·2차 합의안은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그사이 국회는 야당의 '모든 법안을 세월호법에 연계한다'는 전략에 따라 마비 상태에 빠졌다. 정치권과 유족들이 참여한 이번 합의로 우리 사회는 200일 가까이 갇혀있던 세월호 사건에서 벗어날 기본틀이 마련됐다.

여야(與野)가 31일 세월호특별법, 정부조직법, 일명 유병언법(범죄 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등‘세월호 3법’에 최종 합의했다. 이 날 오후 우윤근·이완구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 타결 직후 손을 잡고 국회 운영위원장실을 나서고 있다.

여야는 최종 합의 과정에서 한발씩 양보했다. 우 원내대표는 특검 추천에 유가족 참여를 강하게 반대했던 새누리당의 입장 변화가 감지된 직후부터, 세월호 유가족 측과 수시로 접촉하며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여야와 유가족 사이에 '특검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미리 명단을 제시하고 유가족이 반대하는 사람을 후보자로 내세우지 않겠다'는 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진상조사위원장을 유가족 몫으로 넘기겠다는 방안도 함께 도출됐다. 진상조사위에 관한 한 구성에서부터 특검까지 거의 유족의 뜻대로 할 수 있게 여당이 물러선 것이다.

마지막 쟁점은 정부조직법이었다. 정부조직법 협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난 컨트롤타워를 총리실 산하에 두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여권의 정부조직 개편안 일부를 수용하기로 했지만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은 외청(外廳) 형태로 존치시키자는 입장을 고수하며 협상의 진전이 더뎠다. 새누리당이 반대하자 새정치연합은 소방청만이라도 유지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정부 조직은 여당과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며 야당이 물러섰다. 대신 여당은 야당의 입장을 고려해 해양경비안전본부와 중앙소방본부를 '차관급 본부'로 두면서 실질적 지휘통제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는 양측의 이견(異見)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협상 시한이었던 31일 양당에서 새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막판 고비도 맞았다. 공무원연금 개정안 연내 처리 협조(새누리당), 이명박 정권 자원외교 비리 관련 국정조사 실시(새정치연합)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합의 시한을 못 지키면 국민적 비난이 다시 커질 것을 의식, 이 부분을 빼고 세월호 관련 사항만으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여야가 자기들끼리 합의했던 시한을 어렵게 지켰지만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추진된 세월호 특별법은 사고 후 200일이 다 돼서야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