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청준 6주기 문학제와 문학 평론가 김치수 장례식이 지난 17일 한꺼번에 열렸다. 이청준은 2008년 7월 31일, 김치수는 지난 14일 각각 세상을 떴지만, 두 사람은 1960년 나란히 서울대에 입학해 문학 수업을 쌓은 문우였고, 등단한 뒤엔 1970년대 계간 '문학과 지성' 그룹의 동인이었다.

계간 '문지' 편집동인(김병익 김주연 오생근)은 17일 오전 경기 양평에서 김치수 하관식을 치렀고, 오후엔 광주광역시 조선대에서 열린 제6회 이청준 문학제에 참석했다. 평론가 김병익은 "오늘 우리는 한 분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떠나보냈고, 같은 날 또 한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 섰다"며 "오랜 친구였던 두 분이 저 제상에 가서도 교분을 나누는가 보다"고 풀이했다.

소설가 이청준(왼쪽).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청준의 대표작 중엔 단편 '눈길'이 꼽힌다. 작가가 가난한 청소년기에 의지할 데 없는 홀어머니와 밤새 눈길을 걸은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눈길'이 발표되자 김치수가 이청준에게 전화를 걸어 "자네 왜 우리 집사람을 울리나?"라고 힐난했단다. 김치수는 "이 사람 자랄 때 편모 처지가 비슷했잖아"라며 아내를 울린 친구의 소설을 에둘러 치켜세웠다. 생전에 이청준은 김치수에 대해 "소설을 쓰는 자가 비평가에게 신세짐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신세짐도 신세 나름"이라며 각별한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청준은 김치수 비평이 자기 소설을 '동반자의 관점'에서 꼼꼼히 읽어내 새로운 해석의 빛을 찾아냈다고 했다.

김치수는 4년 전에 낸 마지막 평론집 '상처와 치유'에 이청준 문학론 '상처의 아픔과 치유의 미학'을 실었다. 그 책엔 여러 평론이 들어 있었지만, 이청준론(論)이 바로 그 책 제목이 된 셈이었다. "그의 소설은 한 폭의 세밀화처럼 많은 디테일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미로 게임처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독자로 하여금 자유로운 대답을 선택하게 만든다."

김치수는 이청준 소설이 6·25 전쟁에서 독재 정권 시대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폭력 앞에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한국인의 상처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영화 '서편제' 원작이 된 이청준의 '남도 소리' 연작은 "말로써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을 소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 연작 중 '선학동(仙鶴洞) 나그네'에 대해선 "그것은 소리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내용 없는 형식의 극치를 상징한다"며 "작가는 비상학(飛上鶴)을 불러일으킨 '소리'에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993년 계간 문학과지성 편집동인들과 함께 고향(전남 장흥) 생가를 찾았을 때. 오른쪽에서 첫째가 김치수, 셋째가 이청준.

17일 조선대에서 열린 이청준 문학제에선 '이청준 문학과 금기(禁忌)'란 주제로 다양한 분석이 이뤄졌다. 18일 이청준이 잠들어 있는 전남 장흥의 '이청준 문학자리'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장흥에 사는 소설가 한승원은 평론가 김주연을 보자 "그래, 김치수는 잘 보냈는가"라고 물었고, 김주연은 "그럼, 아주 잘 보냈지"라고 화답했다. 한승원은 "나이 여든이 돼가면 이승과 저승을 함께 사는 무당이 된다"며 "오늘 제가 '미백(未百)선생'(이청준의 호)과 여러분 사이를 잘 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그는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떠올리며 "선생은 선학동에서 신선이 돼 선경을 유유자적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청준의 친구 김치수도 인생의 피안(彼岸)으로 가는 먼 길을 떠났다. 김치수 하관식에서 추모객들은 서광선 목사의 제의로 찬송가 대신 노래 '하숙생'을 합창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