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인(73·사진) 한양대 명예교수는 25년간 강단에서 국제통상론과 상사중재론(商事仲裁論) 등을 강의해온 원로 경영학자. 그런 그가 올해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조선 19대 군주인 숙종(肅宗) 시대를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낸 두 권짜리 역사소설 '경제대왕 숙종'(매경출판)을 펴낸 것이다.

정 교수는 이 소설에서 숙종을 "화폐경제 도입과 사회 인프라 구축으로 조선 후기 시장경제 활성화를 가져온 최고경영자(CEO)"에 비유했다. 상평통보를 법정통화로 채택하고 전국적인 유통을 추진해서 당대에만 전국에 장시(場市)가 1000여개 들어설 정도로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흔히 숙종을 홀린 요부(妖婦) 정도로 치부되는 장희빈을, 집안의 장사를 도왔던 유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숙종에게 '경제 마인드'를 심어준 여인으로 높이 평가한 대목도 흥미롭다.

정 교수는 대학 시절에 소설 습작을 했지만, 본격적인 장편 발표는 이번이 처음. 그는 "권력투쟁이나 음모술수만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직에서 은퇴한 2006년부터 8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사료를 뒤적여 당시 화폐가치와 물가, 인건비 등 경제 관련 데이터를 뽑아낸 뒤 역사적 상상력을 가미해 소설을 완성했다. 정 교수는 "조선 시대의 중앙정부 예산이나 실제 집행 같은 자료들은 빠져 있거나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경영학자 입장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해병대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다. 참전 이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체중 감소와 시력 저하 같은 증상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간 기능 수치가 높다.

전역 이후 성균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교수로 부임했다. 50대 초반에 골프에 입문한 뒤 기(氣) 수련과 골프 타법을 접목한 책 '기골프 건강법'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정조 사후(死後) 세도정치로 인한 조선 후기의 쇠락 과정을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풀어나간 역사소설을 다음 작품으로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