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기존에 의혹이 제기된 광개토대왕비 비문 조작 외에도 추가로 조작한 구절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가 일본의 광개토대왕비 비문 조작 의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형구(70·사진) 선문대 석좌교수(역사학)는 최근 출간한 '광개토대왕릉비'(새녘) 개정증보판에서 "1880년대 일본이 '왜구대궤(倭寇大潰·왜구가 크게 궤멸됐다)'는 광개토대왕비의 구절에서 '구(寇)'자를 '만(滿)'자로, '대(大)'자를 '왜(倭)'자로 각각 끌질을 통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왜만왜궤(倭滿倭潰·성에 가득한 왜가 (성을) 무너뜨렸다)'로 해석되게끔 했다는 것이다. 올해 광개토대왕비 건립 1600주년을 맞아 이 교수는 한국·일본·대만에 소장된 탁본 10여 점과 10여 차례의 현장 답사를 통해 "당시 일본 육군참모본부 소속 장교들이 광개토대왕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비문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부터 '일본의 광개토대왕비 조작설'은 한·중·일 역사학계의 첨예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왜(倭)가 신묘년(辛卯年·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로 해석될 수 있는 비문 구절에서 촉발된 논쟁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이 구절을 근거로 4~6세기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쪽을 200년 가까이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일본에 의한 위조이거나 해석상 오류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거기에 일본이 또 다른 위조를 자행했음을 주장한 것이다.

이 교수는 1997년 아파트 공사장에 '잠입'해 마구 파헤친 흙더미 사이에서 백제 풍납토성 유물을 발견했다. 웅진(충남 공주)으로 천도한 서기 475년까지 500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이 서울 풍납동 일대에 있었다는 것이 그의 발견을 통해 '정설'로 굳어졌다. 이 교수는 "한·중·일 학자들이 자국 중심의 사관(史觀)에서 벗어나 광개토대왕비 연구를 공동 진행하거나 토론하기 위한 창구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