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특파원

중국 국경절인 1일, 건국 65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홍콩의 골든 보히니아(金紫荊·홍콩을 상징하는 꽃)광장엔 붉은 꽃이 넘실댔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하늘로 올라가자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이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관료·기업인 등 중년의 친중(親中) 인사 200여명도 붉은 종이꽃을 손에 들고 국가를 열창했다.

경찰 저지선 밖의 행사장 주변은 딴 세상이었다. 검은 티셔츠에 노란 리본을 단 10·20대 학생 시위대 1000여명이 국기 게양대에서 등을 돌린 채 양팔로 엑스(X)자를 만들어 '침묵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렁춘잉 퇴진"을 외쳤다. 사실상 반중(反中) 시위였다. 시위대 측은 이날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 만큼 시위에 50만명 이상이 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7일부터 학생 시위대 수만명이 홍콩 중심가인 센트럴을 점령한 지 100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홍콩 중문대 학생 궈모(20)씨는 기자에게 "시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교수님들도 수업 대신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를 지켜보던 금융회사 직원 훙모(30)씨는 "홍콩 시민 720만명 중에는 시위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며 "15세짜리 중학생들이 '홍콩 민주화'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거리에 나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불빛 시위 - 중국의 홍콩 행정장관 선거 개편안에 반발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홍콩 주민과 학생들이 1일 어둠이 내리자 일제히 휴대전화 불빛을 밝히고 있다. 이날 건국기념일 축제와 연휴가 시작됐지만 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죽었다’며 검은 옷을 입고 반(反)정부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 현장엔 세계 언론들이 진을 쳤다. 외신들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해 촉발된 이번 시위를 '우산 혁명(시위대가 우산으로 물대포를 막았다는 뜻)'으로 명명하고 '제2의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중국은 서방(西方)의 우려에 대해 "내정간섭 하지 말라"는 입장이지만,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사태가 격화되지 않도록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루탄까지 쐈던 경찰은 이날 시위대 가 10만명 규모로 불어났는데도 오히려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