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고 했다. 잔치는 끝났다고도 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달콤한 나의 도시’는 네 명의 도시 여자를 통해 서른 즈음의 고민과 분투, 사랑을 얘기한다. 20~30대 여성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이른바 ‘한국판 섹스 앤드 더 시티’다. 하루 평균 200명을 상대해야 하는 연애 3개월차 미용사(27), 2년을 사귀었지만 결혼 생각이 없어 뵈는 애인이 못마땅한 인터넷 영어 강사(28), 일에 치여 연애는 꿈도 못 꾸는 3년차 변호사(29), 10년 사귄 친구와 결혼을 앞둔 대기업 사원(30) 등 사연도 각양각색. 출연진과 달리 제작진은 모두 남자다. 김재원·황성준 PD는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여자를 알고 싶었던’ 남자들의 실험카메라 되시겠다. “여자들이 잘 대화하다가도 왜 갑자기 삐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제작진의 고민을 보여주는 일종의 ‘여자 사용설명서’인 셈.
스토리텔링의 대가들답게, 별것 아닌 장면들을 이어붙이는 솜씨는 탁월하다. 출연진 역시 카메라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 자연스러운 편이다. 특히 영어 강사가 자동차 안에서 남자 친구와 격하게 다투는 장면(5회)은 악플을 각오하지 않고선 소화하기 힘든 거친 리얼리티를 뿜어낸다. 2006년 동명(同名)의 소설을 본지에 연재한 소설가 정이현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 바 있다.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하지만 이 프로에 등장하는 곤혹스러움은 기껏해야 "왜 남자친구는 내 맘은 몰라주고 딴 얘기만 한담" 혹은 "결혼하기로 해놓고 프러포즈는 언제 한담" 따위다.
"100명가량의 대상자 중 외모를 어느 정도 고려해 섭외했다"는 제작진의 고백처럼, 출연진은 미모를 겸비한 재원들이다. 20~30대 여성 시청층을 타깃으로 설정한 만큼, 제작진의 노림수는 명확해 보인다. "PPL은 거의 없다"는 제작진의 해명에도 불구, 때깔 좋은 먹거리와 놀거리 등 출연진의 일상은 대책없이 소비지향적인데, 드라마 같은 영상의 지향점은 결국 구매력 가장 센 이 세대 여성의 지갑인지도 모르겠다.
요새 리얼리티에 ’100% 리얼'은 있을 수 없다지만, 친구의 웨딩 사진 촬영 들러리로 초대된 변호사가 친구의 부탁으로 아세톤을 사기 위해 뜰에 있던 웨딩촬영용 오픈카를 몰고 제주도 도로를 질주한다는 설정은 좀 심했다. 시청률 2%대. 잔치는 이미 끝난 듯 보이나, 이들이 표방하는 서른 즈음의 리얼리티가 ‘페이크 다큐’로 보여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