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홍도 동쪽 200m 해상에서 승객과 선원 110명이 탄 유람선이 좌초했으나 탑승객 전원이 구조됐다. 자칫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으나, 선원과 승객, 해경, 인근 선박 등이 침착하게 대응해 사고 20여분 만에 구조를 완료했다. 하지만 사고 유람선은 선령 27년으로 세월호보다 7년이나 낡은 선박인데도 지난 5월 운항 허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돼, 안전 불감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꽝' 암초에 부딪힌 뒤 침수

30일 오전 9시 10분쯤 관광객 105명을 태우고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 동쪽 '슬픈여' 부근을 운항하던 171t급 유람선 홍도바캉스호가 갑자기 '꽝' 하는 충돌음과 함께 멈춰 섰다. 바닷속 암초에 선수 밑부분이 부딪힌 것이다. 1m 크기의 구멍이 뚫린 배 아랫부분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긴급한 구조 - 30일 오전 전남 신안군 홍도 앞바다에서 유람선 바캉스호(171t)가 좌초돼 배 앞머리가 물에 잠겨 있다. 인근을 항해하던 비슷한 규모의 유람선과 어선들이 좌초된 바캉스호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승객들은 충격으로 넘어져 머리와 무릎 등을 다친 데다, 배가 순식간에 앞쪽(선수)으로 기울자 혼란에 빠졌다. 기관실 부근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죠." 부산에서 온 관광객 동모(여·56)씨는 "파도가 높아 배가 크게 흔들렸고, 승객들이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며 사고 순간을 떠올렸다. 김모(51·전남 순천)씨는 "서 있는 사람은 거의 모두 넘어졌고, 일부는 난간 등에 부딪혀 이마에 피를 흘리는 등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람선 선원들의 대응은 지난 4월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와 달랐다. 선원들은 방송과 육성으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도록 안내했고 "구조될 수 있으니 침착하라"며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승객들은 이내 안정을 찾아 서로 도와가며 구명조끼를 입은 뒤 구조 선박이 오기를 기다렸다.

◇세월호 사고 때와 다른 침착한 구조

사고 당시 바캉스호를 뒤따르던 다른 유람선 파라다이스호 선원 박모씨는 바캉스호가 멈춰 서자 즉시 해경 홍도출장소에 구조 요청을 했다. 다른 승객 이모(50)씨도 112를 통해 오전 9시 14분쯤 목포해경에 신고했다.

해경은 B-511기 등 헬기 5대와 513함 등 경비함 3척에 출동을 지시하고 해군과 어업지도선 등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해경 홍도출장소 최재곤(41) 경위는 청년회 등 민간자율구조단에 연락해 구조를 위한 마을 방송을 실시한 뒤 어선과 유람선을 모두 동원해 구조 활동에 나섰다.

10여분 만에 바캉스호에 접근한 유람선 선플라워호가 승객 80여명을, 어선 등이 나머지 20여명을 모두 옮겨 태워, 오전 9시 30분쯤 모든 승객이 안전하게 구조됐다. 사고 발생에서 신고를 거쳐 전원 구조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 됐다.

승객 10여명은 목포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며, 부상이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들은 "선원들이 침착하고 신속하게 승객들을 대피시킨 덕에 모두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선장과 선원 등 5명은 좌초한 바캉스호를 떠나지 않고 홍도항으로 예인될 때까지 끝까지 남았다.

◇선령 27년 낡은 선박

해경은 이날 사고 원인을 운항 부주의로 인한 항로 이탈로 판단하고 있다. 홍도 주민 김모씨는 "암초가 많은 이곳 해역은 사고 위험이 있어 모든 배가 피해 가는데, 바캉스호가 왜 그곳으로 운항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홍도바캉스호 선장 등이 홍도가 아닌 외지 사람들인 데다, 운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초가 많은 해역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바캉스호는 1987년 7월 일본에서 건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1994년 건조된 세월호보다 7년이나 더 오래된 선박이다. 길이 37.44m, 폭 7.6m, 깊이 3.2m에 정원 355명이다. 면허 기간은 지난 5월부터 2023년까지 10년이다. 성인용 구명조끼 640벌과 어린이용 91벌, 구명환 75개, 25인승 구명 뗏목 4개를 갖추고 있다.

바캉스호는 취항 당시 낡은 선령 문제로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홍도 주민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노후 선박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선령 27년인 홍도바캉스호의 운항 허가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해경에 제출했었다. 하지만 해경은 지난 5월 선박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운항을 허가했다.

이날 파도(1.5m)가 다소 높은 기상 속에서 유람선이 무리하게 운항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승객 서모(여·61·부산)씨는 "사고 전부터 파도가 높아 배가 심하게 요동쳤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인근 해역에는 다른 유람선 3척도 각각 100명 안팎 관광객을 태우고 섬 일주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