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어제(28일)가 엄마 기일(忌日)인 거 알았나? 잊었제? 제사는 우리가 잘 모셨다. 걱정하지 마래이~."

원택(圓澤·70) 스님은 지난 29일 속가(俗家) 여동생의 말을 전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제가) 장남 아니라 다행이지요."

원택 스님은 절집에선 유명한 효자(孝子)다. 경북고·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그이지만 1972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한 후 본인 말마따나 '살아계실 때 20년, 돌아가시고 20년' 성철(性徹·1912~1993) 스님만 모시고 있다. 속가는 아예 잊었다.

1일 개관하는 성철스님기념관 내 성철 스님 좌상을 설명하는 원택 스님. 스님은 “성철 스님이 생전에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법문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많은 불자(佛子)들 사이에 회자되는 지난 1993년 성철 스님의 다비식. 큰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연화대 안에 스님의 법구(法軀)를 모신 관을 넣고 불을 넣은 이 다비장은 원택 스님의 아이디어였다. 조선 500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 불교계에서는 큰스님들의 다비에 대한 전통이 거의 끊어진 상태였다. 원택 스님은 은사의 늘그막에 전국의 큰 절과 중국·일본 등의 다비 전통을 두루 살폈다. 그 결과가 성철 스님의 다비식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당시로서는 "욕도 많이 먹었다"는 성철 스님의 사리탑은 전통적인 탑이 아니라 원(圓)과 구(球)를 활용한 초현대식으로 지었다. 미술가 최재은씨의 작품이었다. 덕택에 지금 해인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새벽녘 성철 스님의 사리탑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참선하는 프로그램을 가장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원택 스님의 효행(孝行) 목록에 한 가지가 추가됐다. 1일 개관하는 성철스님기념관이다. 성철 스님 생가터에 조성된 경남 산청군 단성면 겁외사(劫外寺) 바로 앞에 지어졌다. 정면에서 보면 반원(半圓)형. 좌우로 금강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정문을 들어서면 석굴암처럼 보이는 공간 안에서 성철 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 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에서 가져온 흰 돌로 다듬은 성철 스님의 좌상(坐像)은 이제라도 "공부 안 하고 뭐 하노!"라는 일갈이 터져 나올 듯하다. 마침 그 앞엔 '현세(現世)는 잠깐이요 미래는 영원하다'로 시작하는 성철 스님이 참선 수행자에게 줬던 육필(肉筆)이 쓰여 있다.

원택 스님은 이번에도 중국의 대동석굴, 용문석굴, 대족석굴 그리고 티베트의 포탈라궁(宮)까지 둘러보고 참고했다. 그는 "돌아가신 지 20년 지난 스님을 너무 신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부처님이 인도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기념관을 만들었다"며 "스님(성철 스님)께 '또 쓸데없는 짓 했다'고 욕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관람 및 참선 수행은 무료. (055)973-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