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 카바디(Kabaddi)엔 '비인기 종목 중의 비인기 종목'이란 별칭이 붙어 있다. 인도가 종주국인 카바디는 스포츠에 조예가 깊다는 이들도 규칙조차 알기 어려운 생소한 종목이다. 그러니 한국이 인도·이란·파키스탄과 남자 카바디 세계 4강권을 형성한다는 사실엔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29일 인천 송도글로벌대학 체육관. 여자 대표팀이 방글라데시에 18대30으로 패하자 남자 선수들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남자팀은 전날 일본을 44대17로 대파하며 신바람을 냈다. 라이벌 이란과의 조별리그 맞대결은 30일 오전 11시 펼쳐진다. 메달 색깔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경기다.

종주국에서 뛰는 '한국 용병'

아시안게임 첫 메달을 노리는 한국 남자 카바디가 '믿는 구석'은 본토 인도 리그에서 뛰는 4인방이다. 지난 7월 인도에서는 새로 출범한 프로 카바디 리그가 막을 올렸다. 자동차 제조업을 주력 산업으로 하는 마힌드라그룹이 리그 창설을 주도했다.

아시안게임 첫 메달을 노리는 한국 남자 카바디가‘믿는 구석’은 종주국 인도 프로 리그에서 뛰다 돌아온 4인방이다. 지난 7월 인도에서 출범한 프로 카바디 리그는 8개 팀이 37일간 팀당 14게임을 치르는 일정으로 열려 TV 시청자 4억35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사진은 인도 벵갈 워리어스 소속인 이장군(왼쪽)의 경기 모습.

첫 시즌 8개 팀이 37일간 팀당 14게임을 치르는 일정을 소화한 끝에 자이푸르 핑크 팬더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카바디 리그를 TV로 지켜본 시청자 수는 4억3500만명. 인도에서 크리켓 다음가는 인기였다. 그 뜨거운 무대를 카바디 도입 역사가 10년 남짓 되는 한국 선수 4명이 누빈 것이다.

한국 대표팀 주장 엄태덕(30·파트나 파이리츠)은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김성렬(29·벵갈 워리어스)은 합기도와 육상을 했고, 이장군(22· 벵갈 워리어스)은 고등학교 때 조정 선수로 뛰었다. 홍동주(28·다방 델리)는 부산대 스포츠과학부를 졸업했다. 각자 다른 운동을 하던 그들은 교수나 대한카바디협회 관계자의 추천을 받아 카바디의 길로 들어갔다.

이 중 엄태덕과 김성렬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멤버다. 엄태덕은 "광저우 대회 때는 이란에 더블 스코어로 졌지만 작년 무도아시안게임에선 겨우 4점 차로 패했다"며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이니까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종주국에서 뛸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인도 프로 리그가 출범하며 각국 협회에 선수를 추천해 달라는 공문이 왔다. 리그는 각국 협회가 보낸 경기 영상 등을 참고로 인도를 비롯해 영국·케냐·일본·오만 등 13개국 96명(한 팀이 12명)의 선수를 추렸고, 각 팀 구단주들은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를 선발했다. 그렇게 김성렬과 이장군은 콜카타, 홍동주는 델리, 엄태덕은 파트나를 연고로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아직 초창기라 연봉은 많지 않다. 엄태덕이 한 시즌당 1000만원, 나머지는 500만원을 받는다. 엄태덕은 "돈을 생각하고 인도로 가진 않았다"며 "한국 카바디의 미래를 위해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카바디 스타 이장군

인도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는 홍동주(왼쪽부터)·엄태덕·이장군·김성렬은 한국 카바디 대표팀의 주전이다.

보통 5000여명의 관중을 수용하는 경기장은 늘 꽉 들어찼다. 뜨거운 환호 속에서 이장군은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그는 경기 MVP에 세 차례 뽑히는 등 55점을 올리며 올 시즌 득점 순위 19위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선수들도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며 선전했다.

프로 리그를 통해 그들은 많은 인도인이 알아보는 스타가 됐다. 이장군은 "원정 경기를 갔는데 식당에서 공짜 음식을 대접하더라"며 "주인이 카바디 팬이었다"고 했다.

좋은 카바디 선수가 되기 위해 인도 문화에도 젖어들었다. 다신(多神)교인 힌두교를 믿는 대부분의 인도 선수들은 매트를 밟기 전에 원숭이신(하누만)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한다. 경기 전날엔 코코넛과 견과류 등의 음식을 놓고 향을 피우며 행운을 비는 의식도 가진다. 김성렬은 "의식을 치르는 동안 주장이 이마에 빨간 점을 찍어주는데 이젠 알아서 이마를 내밀 만큼 많은 것이 익숙해졌다"고 했다.

인도 프로 리그 4인방은 내년 3월 두 번째 시즌에 돌입한다. 그에 앞서 아시안게임 첫 메달이 절실하다. 메달을 따면 카바디를 아는 국내 팬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자존심도 걸려 있다.

홍동주는 "인도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리그에서 주전을 차지하기란 쉽지 않다"며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멋진 경기를 펼친다면 인도 선수들도 우리를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바디(Kabaddi)

카바디는 숨을 참는다는 뜻의 힌디어다. 고대 인도 판다바족의 왕자 아비마뉴가 상대 부족 영내로 침투해 7명의 적에게 포위된 채 싸우다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일종의 술래잡기와 격투기를 혼합한 경기로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부가 정식 종목이 됐고, 2010 광저우대회부터 여자부도 정식 종목으로 인정됐다. 아시안게임에선 7인제로 경기를 치른다. 공격수(레이더)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수비수(안티)를 터치한 뒤 자기 진영에 돌아오면 터치한 사람 숫자만큼 득점이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