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란 방송인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고 힘들다. 그리고 외롭다. 북적이는 사람들에 치여 피곤을 토로하면서도 문득 혼자라는 사실에 몸을 웅크린다.

마음이 힘든 이유는 무얼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함께 있지만 결국엔 개별적 존재임을 깨달을 때 밀려오는 고독도 그중 하나이지 싶다. 이런 불안과 고독에 잠식된 영혼들에 '마음이 더워지는' 위로를 건네는 책이 있다. 1975년 초판을 재정리해 2014년 다시 출간된 박목월 시인의 에세이 '밤에 쓴 인생론'(강이). 책 속엔 사랑, 고독과 불안,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깊고 따스한 '사랑'의 이야기를 건너 외면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고독'의 이야기에 주목해 본다.

"허무라고 말하기에는 한결 절박하고 애절한 느낌이 드는 것이며 고적(孤寂)이라 하기에는 좀 더 넓이를 가지는 감정이었다. 이상한 갈증과 공허감과 체중이 상실된 막연한 허탈감 같은 것이 종합된 형언할 수 없는 감정 세계, 나는 그것을 고독이라는 말로써 이름을 붙여 보는 것이다." 이 '고독'이 곁으로 다가온 순간을 그는 또 이렇게 표현한다.

"중년기에 접어들어 나는 비로소 빛나고 싱싱하고 뻗어가고 낭랑한 것에서 물러서, 수그러지고 이울고 물러서고 침묵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어울려 종은 우는데 어느 한 개는 침묵하는' 그 외롭고 고적하고 섭섭하고 허전한 것을 나는 떨쳐버릴 도리가 없었다."

고독은 문득 찾아온다. 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다가 어느 순간 정신과 육체를 뒤덮기도 한다. 고독과의 직면은 언제나 불편하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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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는 이 고독마저도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로 인정하고 품는다. "내가 겪은 형언할 수 없는 허전하고 외롭고 섭섭한 감정 세계는 나를 특수한 것으로 마련하기 위한 시련이며, 이 시련을 깊은 인내로써 조용히 참고 받아들여 그 감정 세계를 넓힘으로써 보다 자기다운 자기를 이룩할 계기를 잡게 되는 것이다."

고독의 시간이 오히려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다니 마음이 단단해지고 둥그레진다. 차가운 밤바람 맞으며 책 속에 잠겨본다. 옛 시인의 위로에 맘이 너그러워지고 두려움이 녹는다. 드넓은 깊이의 사랑과 고독 이야기를 지면에 다 담을 길이 없다. 그저 기댈 곳이 필요한 이에게, 인생의 길을 따스하게 응원하고 싶은 이에게, 호롱불 밝힌 아늑한 밤에 읽어보라고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