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a href=http://www.yes24.com/24/goods/14630638?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span><a href=http://www.yes24.com/home/openinside/viewer0.asp?code=1463063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pre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

적을 만들다|움베르토 에코 지음|김희정 옮김|열린책들|313쪽|1만7000원

움베르토 에코(82)의 말과 글을 한자리에 모은 책이다. 그가 2000년 이후 학술대회에서 한 강연과 신문잡지에 쓴 칼럼을 모았다. 청탁을 받아서 쓴 글이기에 책 부제를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라고 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기호학·인류학·문학·천문학·지리학·종교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책머리를 장식한 글 '적을 만들다'는 오늘날 유럽을 지배하는 극우파의 외국인 혐오증을 비판했다. 인간 사회가 고대부터 집단 정체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외부의 적(敵)을 상정한 습관이 21세기에도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피부와 언어, 문화가 다른 타자(他者)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교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에코는 "현실을 주목하자"며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외부의 적이 없으면, 내부의 적이라도 희생양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옥, 그것은 타인"이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했다. 에코는 "우리는 타인을 적으로 만들고, 그 위에 산 자들의 지옥을 건설한다"며 인류의 어리석음을 냉소적으로 질타했다.

이 책에 실리진 않았지만, 에코는 프랑스 주간지 '마리안느'와 가진 인터뷰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이 유일하고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주간지 기자에게 독한 유머를 날렸다. "당신이 내 아내와 섹스를 한다면, 나는 당신의 입장에서 서서, 누구보다도 당신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에코는 인간이 지닌 합리적 이성과 미학적 감성을 신뢰한다. 그는 '절대와 상대'란 주제의 강연에서 절대적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인간은 진리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시인 단테의 말을 인용했다.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표현의 불가능성을 말한다"고 했다. 시인 키츠도 인용했다. "아름다움은 진리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알고 있고,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식은 그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한다. 아낌없는 불만과 날카로운 지적, 휘몰아치는 화법은 여전하다.

에코는 강연 '검열과 침묵'에서 21세기 문명의 소음을 조롱했다. 1930년대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은 보도 지침으로 언론의 입을 막아 침묵 사회를 관리했다. 그러나 21세기 언론은 온갖 스캔들을 떠들썩하게 보도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다. 요즘 이탈리아 언론이 동유럽 이민자의 범죄를 요란하게 과장 보도함으로써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광고도 요란하게 제품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 때문에 21세기는 소음 중독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코는 "내면의 인간으로 돌아가라"며 침묵을 호소한다. 기호학자들에겐 '침묵의 기호학'을 연구하라고 당부한다. '연극 장치로서의 적막, 정치적 논쟁 속의 침묵, 위협을 조성하는 침묵, 음악 속의 고요'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에코는 스스로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다"라며 "내 지식을 한자리에 모을 뿐"이라고 말해왔다. 이 책은 그가 읽은 책들에서 찾아낸 지혜와 격언과 속담의 숱한 인용으로 꾸며졌다. 그는 "청탁받아서 쓴 글이 반드시 독창적일 필요는 없지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며 적절한 인용의 축제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