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학사 전공인 신동원(54·사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교수는 "'노비들이 병났을 때 약을 썼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신분사회인 조선시대 가장 지위가 낮은 이들인 노비도 의약(醫藥)의 혜택을 받았느냐는 물음이다. 신간 '조선의약생활사'(들녘)에 해답이 들어 있다. 950쪽 두꺼운 책이다. '묵재일기' '양아록' '미암일기' 같은 문집과 조선왕조실록 등 옛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신 교수는 "조선 사람들은 어떤 병을 앓았는지 일상의 삶을 중심으로 본 미시사"라고 했다.

조선 사람들은 어떤 병으로 많이 죽었을까. 신 교수는 16세기 이문건(1494~1567)이 남긴 '묵재일기'를 통해 통계를 뽑았다. 이문건은 경상도 성주 지역에서 의원 생활을 했다. 일기에서 사망자 129건 중 가장 많은 33건이 전염병인 역병(疫病)이었다. 천연두(두창)가 16건, 이질(痢疾)과 종기가 각각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출산 때 사망도 7건으로 적지 않았다. 자주 발생한 질병의 통계도 뽑았다. 1914년부터 22년간 진료 기록을 남긴 서울 낙원동 보춘의원의 환자 4만4697명 중 감기가 1만60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설사 5213명, 복통 4789명 등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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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문인들이 앓은 질병 기록도 흥미롭다. 다산 정약용은 거의 '질병의 종합병원'이라 할 만하다. 평생 옴·치통·폐병·중풍 등 온갖 병과 싸우며 큰 학문을 이뤘다. 정약용은 1811년 50세 때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입가에 항상 침이 흐르고 왼쪽 다리는 마비 증상이 있고 혀가 굳어져 말이 어긋난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신 교수는 "지금은 의학 발전으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오는 고통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노비는 약을 제대로 썼을까? 신 교수는 "노비들은 약 이름을 알고 의원에게 약을 타러 가기도 했다"면서 "신분적으로 묶인 존재지만 주인에게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