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캐디 K씨가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박 전 의장은 입을 꼭 다문 상태다.

K씨(24)에게는 그날이 악몽 같다. 강원도 원주오크밸리의 캐디로 일하고 있는 K씨는 지난 9월 11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근무할 채비를 했다. 오전 8시경, 그는 총 4명의 고객과 함께 라운딩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한 고객의 낌새가 이상했다. 신체 일부를 접촉하더니,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던 것. 급기야 K씨는 라운딩을 하던 중간에 무전기를 이용해 "캐디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K씨에게 손을 댄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박희태 전 국회의장. 피해를 입을 당시까지만 해도 K씨는 박 전 의장의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K씨는 그길로 원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을 통해 K씨는 "팔을 심하게 주물렀다. 다른 사람이 없을 때 등을 감싸며 오른쪽 가슴을 만지고 카트에서도 옆자리에서 허벅지를 만졌다. 마지막 홀에서도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엉덩이를 움켜쥐고 갔다"고 밝혔다. 경찰 진술에서는 "홀을 돌 때마다 계속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박 전 의장은 "손녀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것"이라면서 "싫은 표정을 짓거나,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나타낸 일이 전혀 없다"라고 한 것으로 전해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은 현재 강원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로 넘어간 상황이다. 경찰청에서는 9월 16일 박 전 의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 상태. 박 전 의장은 요구서를 받으면 10일 이내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 만일 불응하면 2차, 3차 요구서를 추가로 받게 된다.

청 관계자는 "만일 소환조사 이후 혐의가 인정되면 정식으로 입건될 수도 있다"면서 "특히 지난해 6월부터 성범죄 친고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합의 후) 고소를 취하해도 수사기관이 처벌에 나설 수 있게 돼 입건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박 전 의장은 이후 대응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캐디 K는 누구?

비단 K씨뿐만이 아니다. 사실 캐디의 성희롱 문제는 계속돼왔다. 지난 10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경남 남해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관할지역 내의 한 골프장 캐디 A씨가 내장객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라운딩을 마치자마자 골프장 마스터에게 곧바로 성추행 사실을 보고하고 곧장 경찰서로 가서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현직 캐디 및 노동단체 등에 따르면 K씨나 A씨처럼 성희롱 이후 고소를 진행하는 건 매우 드문 케이스다. 전국여성노동자협회 관계자는 "(K씨는 조합원이 아니지만) 기존 조합원 중에 성희롱 피해를 당하고 고소한 사례는 여태 없었다"면서 "이는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K씨는 1991년생으로 알려졌다. 골프 전문 고등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골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이 리조트 골프장에서 K씨와 라운딩을 한 적이 있다는 직장인 R씨는 "당시 (K씨가)일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됐다고 했는데, 여러모로 굉장히 베테랑 같았다"면서 "친절하고 매너 있게 경기를 운영해 '친절 카드'를 보낸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R씨는 이어 "그의 특이한 이름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도 언급했다.

골프장 측 "똥 밟았다 생각해라"

앞서 언급한 남해에서 발생한 캐디 성추행 사건의 경우, 해당 골프장 측에선 "고소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 가해 내장객을 출입금지자로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박 전 의장의 경우는 어떨까. 이번 사건이 발생한 오크밸리 홍보팀장 K씨에게 직접 물어봤다. "혐의가 인정되면, 박 전 의장을 출입금지 시킨다는 골프장 내규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는 바 없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에 타 골프장 관계자는 "국내 많은 골프장에서 골퍼의 폭언·폭행·진행방해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 퇴장 조치할 수 있다고 게시문을 붙여 놓고 있지만 웬만해서는 퇴장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박 전 의장과 같은 VIP를 쉽게 출입금지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방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초 고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충북 진천 한 골프장 소속 캐디 강은영(가명·21) 씨는 "경기과에 얘기를 했더니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리라'고 했다"면서 "회사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니 그 인원 이름 외웠다가 다음 배치 때 거부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강 씨는 이어 "대중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는데 아직까지 골프 문화는 한참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전라도의 한 골프장 소속 캐디 권동희(가명·32) 씨는 "폭언과 성희롱으로 회사에 얘기를 해도, 임원진이 경기과에 내려오더니 '참고 일하라'고 했다"면서 "회사가 운영이 어려워져 그린피 6만원의 완전한 퍼블릭 골프장이 된 후로는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한국골프캐디협회 관계자는 "골프장 측에서는 캐디들이 손님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 '알아서 잘 하라'며 캐디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소문이라도 나면 자칫 영업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캐디들은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하다. 이미 올 2월 대법원은 캐디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골프장 측의 불공정한 처우 등에도 쉽게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또 캐디의 인권을 대변할 수 있는 성격의 노동조합 및 단체가 따로 없다 보니 집단 대응에 나서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현직 캐디인 권동희(가명) 씨는 "이번 K씨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캐디들의 인권이 한 단계 상승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골프장 캐디는 총 2만4천5백60명에 이른다.

■ 유명인사의 '캐디' 발언

필드에서만 당하는 게 아니다. 브라운관에서도 캐디는 수난을 겪는다. 유명인사의 캐디 비하 발언을 모아봤다.

# 봉만대 영화감독
지난 2013년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에서 봉만대 감독은 "라디오스타 MC들을 주인공으로 옴니버스 영화를 찍고 싶다"면서 "영화 중 김국진 편은 김국진과 캐디가 라운딩을 하다가 눈이 맞아서 그늘집에서 정사를 한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 정준호 영화배우(극 중)
지난 2005년 방영된 SBS 드라마 에는 우진(정준호 분)이 동행한 남자에게 희수(김정은 분)를 전용 캐디라고 소개하며 "비싸게 돈을 줬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극 중에서 이를 오해한 남자가 "잘 알겠다"며 희수에게 가서 하룻밤을 보내려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묻는 등 무례하게 대한다는 내용이 방영됐다. 이후 물의를 빚자 SBS 측은 비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 심형래 영화감독
지난 2008년 심형래 감독은 김포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에서 '나의 도전과 실패'라는 제목의 강연 도중 주제와 상관없는 성적 발언을 했다. 심 감독은 "남자, 여자, 아줌마 세 인종이 있는데 아줌마는 중성"이라며 "우리 남자들은 엘리베이터 걸, 간호원, 캐디,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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