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2.5km 떨어진 광평리 4만평에 장형태(60) 대한종묘조경 대표가 기르는 모종이 빼곡하다. 스무해 넘게 경상도를 벗어난 적 없던 그를 36년이나 구례에 눌러앉게 만든 건 지형과 기후다. "군 생활을 이쪽에서 했어요. 우선 지리산 깊은 계곡 덕에 물 대기가 좋아요. 검은흙은 부슬부슬하지 않고 촉촉해서 나무 심으면 딱 맞죠."

장형태는 대한민국 제1호 종자(種子)명장이다. 그가 접붙인 묘목이 수만 그루 넘는다. 지금은 아들도 조경학을 전공하고 묘목 키우기에 뛰어들었다.

경북 과수원집 아들이던 그는 유복했다. 수십명 일꾼을 부린 적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장병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그가 군에 간 동안 어머니·누나·여동생은 땅을 팔아 살아갔다. 제대하고 오니 땅도 거의 안 남았고, 아버지는 보름 만에 돌아가셨다. 차비에 보따리 하나 들고 혼자 구례로 갔다.

‘씨앗 명장’ 장형태가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낸 층꽃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말했다. “씨앗을 전혀 다른 환경으로 가져와 길러내는 건 생명을 창조하는 일과 같아요. 씨앗이 잘 크면 자식 잘된 것보다 뿌듯해요.”

"경상도 청년이 땅 빌려달라고 하니 텃세가 있었죠. 하지만 다 사람 사는 곳 아닙니까? 나중엔 자금도 꿔주고 일손도 거들어줬어요. 봄에 땅 빌려서 나무 심고 가을에 갚는 식이었죠."

무일푼으로 시작했지만 실패는 면했다. 다들 쌀보리만 지을 때 단감·유자·대추·매실을 길렀다. 3년 후에는 국내 최초로 양다래(키위) 묘목을 길러 값을 절반으로 낮추는 데 기여했다. 1000평으로 시작한 것이 매년 커져 3000평 되고, 5000평 됐다. 자신감과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1994년 수해로 묘목 1만평이 다 쓸려나갔어요. 10년간 묘목에만 투자했는데…. 아깝지만 미련 두면 뭐합니까. 젊으니까 다시 시작하면 되죠."

그런데 진짜 위기는 소리 없이 왔다. 농업 구조가 변하고 있었다. 젊은이가 떠나간 농촌에는 나무 키울 사람도 없었다. 묘목을 키워 파는 그로선 시장이 사라진 것. "매년 2만~3만평 묘목을 그냥 갈아엎었어요. 한 해 10만원어치도 못 판 적도 있어요. 한 번 씨앗 심으면 대를 물리는 게 나문데, 희망이 없었어요. 홍수보다 암담했습니다."

과수 묘목을 접고 그가 찾아낸 것이 자생(自生)식물이다. "전국 산의 풀나무를 구경하고 다녔죠. 전부터 취미로 식물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거리엔 왜 우리 식물이 없을까. 공원이나 도로변에 메리골드·팬지·사루비아·꽃양배추 같은 수입종만 널렸잖아요."

자생식물을 묘목·모종으로 키우면 어떨까 싶었다. 여러 씨앗을 채취해 농장에 심었다. 씨앗 10종류 가운데 한두종만 모종으로 살아났다. 기존 연구도 별로 없어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야 그 식물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 배로 1시간 더 가는 무인도에서 연화바위솔 씨앗을 구했어요. 다시 가기도 힘든 곳인데 싹이 트지 않아 속상했어요. 나중에 종자은행에서 씨를 받아와 성공은 했지만, 자생지에서 씨앗을 가져와야 마음이 놓여요. 생물은 공산품과 달라요. 실패하면 바로 다시 만들 수 없어요. 계절이 바뀌길 참고 기다려야 해요."

그렇게 5년, 매발톱꽃·붓꽃·원추리·구절초·꽃무릇·맥문동 등이 장형태의 손을 거쳤고, 지금은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멸종위기종인 전주물꼬리풀도 복원해 대량생산하고 있다. 그는 야생화 전시회를 열고, 관공서나 기업에 자료집도 배포해 우리 식물을 홍보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제대로 '재미'를 봤다. "모처럼 우리 꽃으로 도시를 가꾸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시장이 700억원 규모로 커졌어요. 서울숲, 여의도생태공원, 광주비엔날레, 인천공항, 그리고 아파트 단지들까지요. 전국에서 저를 찾아왔어요."

직원 10명으로 연매출 20억원을 넘긴 해도 있다. 장형태는 전남 지역 창조농업인회 회장이다. 농가들에 경영 컨설팅도 해준다.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기술자입니다. 요즘도 봄엔 하루 12시간씩 모종에 매달려요. 그게 본업이죠."

그는 "이젠 어떤 씨앗도 모종으로 길러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명장이 되고 나니 목표가 하나 더 생겨요. 씨앗 잘 키워 애국하고 싶어요. 누구나 자생식물을 싸고 쉽게 접하게 하고 수출도 하는 거죠. 농가도 부유해지니 좋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