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서울 삼성동 본사 부지에 대해 입찰에 부친 결과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컨소시엄이 가장 높은 가격인 10조5500억원을 써내 낙찰(落札)받았다. 현대차는 이곳에 계열사 30여 곳이 입주하는 초고층 빌딩과 자동차 테마파크를 세워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우토슈타트는 세계적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이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사옥·공장·박물관·체험공간 등을 모아 꾸민 곳으로 연간 250만명이 찾는 독일 10대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18일 하루에만 현대차 3개 회사 주가가 급락해 8조4000억원의 시가총액이 허공에 사라졌고, 19일에도 현대차 주가가 1.5% 빠졌다. 주로 외국인들이 현대차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다. 현대차가 너무 많은 금액을 써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전 부지를 개발하려면 땅값 외에 기부채납·세금·건설비까지 보태 최대 20조원을 부담해야 한다. 작년 현대차 3사의 영업이익이 14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1년 반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폴크스바겐이 아우토슈타트 조성에 쓴 돈 6000억원과 비교하면 너무 과하다.

현대차 내부의 후진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걱정도 대두하고 있다. 현대차 응찰가는 감정평가액의 3배가 넘고, 업계가 예상한 4조~5조원보다 2배 이상 높다. 정몽구 회장이 이 금액을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는 앞으로 친환경차 개발 등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야 할 곳이 많다. 한전 부지 개발은 금싸라기 땅에 멋진 사옥을 짓는 부동산 사업에 한눈을 파는 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런 중요한 결정이 총수 한 사람의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을 보면 증권시장의 걱정은 당분간 잠잠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 개발을 위해 한 해 2조원에 달하는 연구·개발비를 줄이거나 임금 인상이나 배당을 당분간 동결할지 모른다. 자동차 판매 가격을 올려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길 가능성도 많다. 그러지 않아도 현대차 에쿠스의 국내 판매가가 미국보다 4000만원 비싸다는 등 국내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불평이 적지 않다. 현대차는 국민의 걱정을 불식(拂拭)시킬 수 있는 설명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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