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 '존쿡 델리미트'의 인기 메뉴 '소시지 플래터'는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소시지가 올라온다. 먹어보고 마음에 들면 테이블 옆 진열대에서 집어서 사갈 수도 있다. 통인동에 있는 '유로 구르메'에서는 직접 수입한 유럽산 햄과 치즈, 머스터드(양겨자) 따위 식재료를 판매할 뿐 아니라 이 재료들로 만든 샌드위치 등을 테이블에 앉아 먹을 수 있고 사갈 수 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레스토랑 '수마린'에서 운영하는 '에피세리'는 프랑스·태국·중동 등 세계 각국 음식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이 요리들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카운터에서 판매한다.

조리된 음식과 함께 식재료도 파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서양에는 이러한 형태의 매장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를 델리(deli)라고 부른다. 미국 외식업계에서는 식료품점을 뜻하는 '그로서리(grocery)'와 '레스토랑(restaurant)'을 합친 '그로서런트(grocerant)'란 신조어(新造語)도 내놓았다. 유럽의 델리는 정육점이나 식료품점에서 원재료와 함께 조리된 음식을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신사동‘존쿡 델리미트’에서는 매장에서 만든 햄과 소시지를 먹을 수도 있고 사갈 수도 있다. 식료품점과 음식점이 결합한‘델리형 매장’이 늘고 있다.

이 업체들이 델리형 매장을 내는 이유는 국내 소비자에게 생소한 외국 식재료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2011년부터 '유로 구르메'를 운영하고 있는 '구르메 F&B' 서재용 대표는 "서양 식자재를 요리사들조차 잘 모르더라"며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주려고 냈는데 매출도 괜찮아 2호점을 파이낸스센터에 곧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존쿡 델리미트를 운영하는 육가공 업체 '에쓰푸드' 관계자는 "유럽 전통 소시지와 햄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등 이름부터 어려워서 어떻게 먹는지도 소비자들이 잘 모른다"며 "국내에서는 소시지나 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아직 있어서 이를 불식시키겠다는 목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왜 그로서런트를 찾을까. 레스토랑 컨설턴트 김아린씨는 "재료부터 다듬어서 식사를 차릴 시간이 없는 바쁜 이들을 위한 가정 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이 최근 트렌드"라며 "싱글족이나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라면 식재료를 대량으로 사다가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느니 잘 만든 가정 간편식을 사다가 먹는 편이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델리형 매장·그로서런트의 최근 성장세를 같은 이유로 설명한다.

하지만 국내 델리형 매장·그로서런트에서는 아직 한국 사람이 '집밥'보다는 '외식'으로 인식하는 외국 음식을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비자들이 이러한 형태의 매장을 찾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음식평론가 강지영씨는 '식재료에 대해 높아진 관심과 인식'을 꼽는다. 강씨는 "최근 레스토랑 승패는 식재료에서 갈린다"고 말했다. "요리사들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다보니 식재료가 승부처가 되고 있어요. 또 패밀리레스토랑 등 많은 식당이 매장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내기보다는 진공 포장해 배달된 완성 요리를 데우기만 해서 내놓거든요. 그런데 델리형 매장에서는 원재료부터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또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지요."

강씨는 "프랑스에는 '특정 지방의 닭으로 만든 요리를 파는 델리'라는 식으로 구체적이고 세분화돼 있다"면서 "앞으로 한국에도 '전남 고흥의 식재료상' 식으로 세분화된 매장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