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엔총회에서 사상 최초로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장관급 회의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북한이 13일 자체적으로 주민들의 인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는 내용의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세를 막아내고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번 유엔총회가 북한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국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北 인권 국제 공론화 본격화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 인권 개선 필요성을 언급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 인권을 주제로 윤병세 외무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등이 참석하는 별도 장관급 회의도 예정돼 있다.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은 남북한과 미국의 외교 수장들이 공개적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공개 토론을 하게 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이번 총회에서 재조명되고, 대북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핵 문제 외에 인권 문제가 추가로 공론화되는 것이다. 앞서 시드니 사일러 미국 6자회담 특사는 지난 4일 "핵 문제와 인권 문제는 상호배타적이거나 모순적인 정책 목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케네스 배 등 북한 억류 미국인 3명의 석방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 따른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北, 미국인 인질에 6년 노동교화형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4일 미국인 관광객 매튜 토드 밀러(24)가 재판을 받는 사진과 함께 그에게 6년의 노동교화형이 선고됐다고 보도했다. 밀러는 지난 4월 북한에 들어가면서 관광증을 찢는 등 입국 검사 과정에서 법질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북한에 억류됐다. 북한은 밀러 외에 케네스 배,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 등 3명의 미국인을 억류 중이다.

◇북, 정면 돌파 시도

북한은 리수용 외무상을 '소방수'로 파견하겠다고 예고했다. 리 외무상은 오는 27일쯤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인권 문제를 조목조목 반박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자체 인권보고서도 발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우리 사회주의 제도의 특성과 인권 보장 정책, 인민들의 인권 향유 실상을 사실 그대로 반영한 조선인권연구협회의 보고서가 발표됐다"며 보고서 전문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북한은 인권과 관련한 국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도 밝혔다. 북한은 보고서에서 "우리 공화국은 창건된 첫날부터 인민 대중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 절대시하는 원칙 밑에 시종일관 인민을 위한 시책들을 실시해왔다"며 북한 주민들이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의 자유, 정당 조직 및 가입의 자유, 신앙·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6·25는 미국의 북침 전쟁"이라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북한이 인권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가 김정은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최고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유엔총회 전 자체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북한식 물타기 수법"이라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주민들이 동요하고 정권에 실질적 위협이 되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가 '보통 국가'를 열망하는 김정은 제1비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은 최근 강석주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를 유럽에 파견하고 리수용 외무상을 유엔에 보내는 등 공세적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며 "김정일 시대처럼 '은둔의 나라'로 남기보다는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권력이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길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