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은 초가을 주말을 즐기러 나온 가족, 연인들로 북적였다. 공원을 찾은 사람 중엔 특별한 나들이에 나선 가족들도 있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생애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202명의 생명을 밝힌 뇌사 장기 기증자 41명의 가족들이 전국에서 모인 것이다. 뇌사 장기 기증인을 기리기 위한 국내 첫 '일일 추모공원' 행사였다. 이날 공원 북쪽 피크닉장 나무 41그루에는 'donor'(기증인)라고 쓰인 빨간 리본이 달렸다. 숨질 당시 네 살이었던 왕희찬군부터 고 박순임씨(숨질 당시 71세)까지 뇌사 장기 기증자의 사진, 생년, 사망연도를 담은 아크릴판 기념비가 각 나무 아래에 놓였다. 사망연도 뒤에는 빨간 물결(~) 표시가 있었다. 이들의 생명 나눔이 다른 생명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피크닉광장에서 아빠·엄마와 함께 온 네 살 수현이가 4년 전 세상을 떠난 오빠 왕희찬군의 사진 앞에 꽃을 놓았다. 사망연도 뒤에는 희찬군이 장기를 기증해 다른 생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빨간 물결(~) 표시가 그려져 있다(빨간색 점선 원 안).

'2007~2010~'. 희찬이의 기념비 앞에 아빠 왕홍주(50)씨, 엄마 송미정(48)씨, 동생 수현(4)이가 찾아왔다. "수현아, 나무도 많고 넓은 곳에 오빠랑 같이 나오니까 좋지?" 희찬이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에 태어난 수현이는 어느덧 오빠 또래가 됐다. 수현이가 사진 속 어린 오빠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희찬이는 왕씨 부부가 결혼 15년 만에 얻은 첫 아이였다. 엄마가 10번의 유산 끝에 임신 7개월 만에 낳은 희찬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생의 첫 고비를 넘겼다. '희망찬 아이로 살아가라'는 뜻에서 이름도 희찬이로 지었다. 희찬이는 네 살 되던 해 폐렴과 싸우다 호흡 곤란으로 뇌사했다.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가느니 그 장기를 누군가 받는다면 아들의 생명이 계속 이어진다고 부부는 믿고 싶었다. 2010년 7월 22일 희찬이의 심장·간·신장·각막은 3~5세 또래 아이 5명에게 이식됐다. "애가 얼마나 똘망똘망한지 의젓하고 떼쓰거나 응석 부리지도 않았어요. 빨리 가려고 그런 식으로 효도를 다했나 싶습니다." 아빠 왕씨가 말했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갑작스레 이별해야 했지만 장기 기증은 슬픔을 이겨낼 힘을 줬다"고 말했다. 자신의 각막과 신장을 4명에게 나눠주고 세상을 떠난 고 김경식(당시 51세)는 2006년 경기도의 한 축사에서 지붕 철거 작업을 하다가 추락하는 동료를 구하려다 함께 떨어졌다. 동료는 살았지만 김씨는 머리를 크게 다쳐 뇌사에 빠졌다. 가족들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서야 김씨가 철거 일을 한다는 걸 알았다. 아내 양미애(57)씨는 "예전에 식당을 할 때도 형편 어려운 사람에게 공짜로 밥을 줄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던 남편이라면 마지막 길에도 장기를 기증해 남을 도우려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공원을 찾은 김성수(51)씨는 유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고 했다. 주저하고 있던 김씨에게 아들을 떠나보낸 한 어머니가 먼저 다가왔다. 그 어머니는 "내 아들은 떠났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내 아들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김씨는 "그렇게 말하던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임종우(37)씨는 "가족들이 슬픈 표정을 짓고 힘들어 할 줄 알았는데 환하게 웃으며 뿌듯해하는 모습이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추모 행사는 원래 9월 9일 '장기 기증의 날'에 맞춰 열릴 예정이었지만 추석 연휴와 겹쳐 미뤄진 것이었다. 9월 9일이라는 날짜에는 한 사람의 장기 기증으로 최대 '9명'(신장·폐·각막 각 2개, 심장·간장·췌장)을 '구(求)'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기증인 대부분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해 납골당이나 묘지조차 없는 분이 많아 유가족들은 늘 고인을 추모할 공간이 없는 점을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