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마지막 10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비결로 ①연골 ②인간관계 ③할 일을 꼽았다. 이 세 가지에 따라 개개인의 행복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연골에 이어 오늘은 인간관계와 할 일 차례다.

유재완 할아버지와 김일선 할머니는 올해로 결혼한 지 만 60년이 됐다. 부부는 매일 집 근처를 산책하고, 아파트 앞 수십 미터에 걸쳐 있는 꽃밭을 가꾼다.

서울 성산동에 사는 유재완(91) 할아버지는 60세에 은퇴한 뒤 지금껏 자서전을 세 권 썼다. 65세에 쓴 첫 책은 '노을처럼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내자'는 각오를 담은 에세이집이었다. 76세에 쓴 두 번째 책은 북에 남은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이었다. 87세에 쓴 세 번째 책은 부산 피란시절을 회고한 책이었다. 할아버지는 "유명해지려고 쓴 책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쓴 책"이라고 했다. 300부씩 찍어서 자손들에게 나눠줬다.

고향은 함남 문천. 해방 후 교사로 일하다 6·25가 터졌다. 1·4 후퇴 때 '사흘이면 돌아오겠거니' 생각하고 피란선에 올랐는데 그 길로 영영 가족과 작별했다. 전후 서울 숭의여고 교사로 일하다 한국일보로 옮겨 업무부국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퇴직할 때 3남매 중 막내딸이 '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일본 책을 선물했다. 할아버지는 "30년 넘게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해도 책 내용이 참 재미있고, 다가왔다"고 했다.

"은퇴를 앞둔 중년 가장 이야기였어요. 신문기자 하는 딸은 너무 바쁘고, 아들은 먼 지방에서 어렵게 살고…. 딸이 걱정 끝에 아버지에게 '홀로서기 훈련'을 시키는 내용이었죠. 올 초 아내(85) 몸이 아파 20일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 책 내용이 새삼 생각났어요. 그래도 요즘은 전기밥솥이 있고 반찬가게가 있으니 책에 나온 세상보단 훨씬 편리해졌죠."

퇴직 후 할아버지는 꾸준히 '할 일'을 찾아서 했다. 은퇴 후 첫 20년간 동네 복지관에서 문맹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무보수 자원봉사였다. "글을 모르던 사람이 한글을 익혀서 편지와 일기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습니다."

이후 동창회보 편집인을 맡아 7년간 분기별로 한 번씩 12쪽 분량의 동창회보를 냈다. 할아버지는 함흥 영생중 졸업생이다. "이북에 있는 학교라 분단된 뒤 '후배'가 없습니다. 동창회 하면 79~80세 된 '아이들'이 막내입니다. 제가 선배들 모시고, 후배들 이끌고 동창회보를 편집했지요."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가까운 공원까지 1시간쯤 쉬엄쉬엄 걷는다. 집에 오면 아파트 앞 화단을 가꾼다. 할아버지 내외가 사는 성산동 아파트 앞은 수십m에 걸쳐 옥잠화·능소화·꽃잔디·영산홍·작약·깨꽃·백합이 우거져 있었다. 한가한 오후, 책 쓰다가 이따금 옛날이 그리워지면 이난영과 고복수의 CD를 튼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10년을 알차고 편안하게 보내는 비결을 이렇게 충고했다. "돌이켜보니 저도 젊었을 땐 국장도 되고 싶고 더 높은 사람도 되고 싶었을 텐데 지나보니 다 별거 아닙디다. 봉사하세요. 평생 제일 좋은 추억이 승진한 기억이 아니더라고요. 화단 가꾸세요. 화단 없으면 화분이라도 사시고요. 요컨대 움직이세요. 뭐라도 하세요. 그리고 글을 읽으세요. 아침마다 신문 읽는데, 쓱 보지 말고 정독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