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11일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을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핵심 쟁점이던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다시 말해 원 전 원장이 2009년부터 정치성 인터넷 댓글을 달도록 지시해 국정원법을 어긴 것은 맞지만 그것이 2012년 대선에 개입할 목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11만7000여건에 달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 내용은 대통령·여당을 지지하고 정부의 정책기조에 반대하는 야당 및 정치인들을 반대·비판하는 활동이어서 불법 정치 관여 행위에 해당하고 이 같은 활동은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에 따른 것으로 인정된다"면서도 "원 전 원장이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을 목적으로 명시적인 선거운동을 지시했다는 점은 전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인터넷상의 '국정 홍보'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 비판' 활동 중 선거 때 이뤄진 것은 불법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구체적인 선거 개입 의도나 계획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거법 위반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원 전 원장의 지시 내용을 보면 대선에 절대 개입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지시한 사실만 확인되는 데다,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은 (대선이 가까워진) 2012년 10월 이후 뚜렷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아직 2·3심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1심의 판단은 작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극심한 정쟁(政爭)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이란 것이 실은 실체도 없는 것이었다는 결론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이미 무죄를 받았다. 오히려 김 전 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고 공격한 권은희 전 수사과장이 재판에서 허위 진술을 한 것이 드러났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 사건이 불거지면 증거를 따질 겨를도 없이 곧장 편싸움장으로 바뀌고 만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증거엔 아예 눈감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과장해 부풀린다. 이제는 정치 세력만이 아니라 검찰·경찰에까지 이런 풍조가 번지고 있다. 수사 검사들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반대되는 정황에도 주목했다면 검찰 내 분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 전 원장은 비록 선거법 위반 혐의에선 벗어났으나 정치 관여에 대해선 엄중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을 좌시할 수 없는 만큼, 국정원의 대북 대응 활동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활동이 정치적 내용을 담는 경우엔 엄격한 통제가 이뤄져 정치 개입 소지를 없애야 한다. 원 전 원장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추기기까지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이 사건을 정치와 완전히 절연하는 계기로 삼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없는 것이 낫다"는 소리를 듣는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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