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 <a href="http://www.yes24.com/24/goods/14350586?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 title="새창열기"><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 alt="구매하기"></a></span><

종이는 옛 시대의 빛바랜 유물(遺物)이 될 것인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모든 자리를 내주고 역할을 다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우리 삶 곳곳에서 이런 움직임은 감지된다. 단말기를 통해 전자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신문을 본다. 종이 한 장 오가는 일 없이 항공편을 예약하고 탑승 수속을 한다. 차량 번호 인식 기계를 통해 주차권 없이 주차한다. 종이 책의 종말에 대한 뉴스도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신간 '종이의 역사(니콜라스 바스베인스 지음, 21세기북스·원제 'ON PAPER')'와 '페이퍼 엘레지(이언 샌섬 지음, 반비·'PAPER: an Elegy')'는 종이에 보내는 경의(敬意)이자 헌사(獻辭)다. 두 책의 저자는 모두 종이의 미래를 낙관한다. "우리 사회에 종이가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일각의 예측은 당장은 들어맞지 않을 듯하다"('종이의 역사' 14쪽), "종이가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무얼 잃게 될까?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이다"('페이퍼 엘레지' 13쪽).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말했다. "오늘날 종이에 작별을 고한다고 함은 어느 날 글쓰기를 익혔다는 이유로 말하기를 멈춘다는 말과 같다."

종이가 일군 인류 문명

'종이의 역사'는 종이에 얽힌 2000년 인간의 궤적을 탐구한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류가 일군 문명의 세계는 종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뭐, 그렇게까지' 하다가 책을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기계와 철도 같은 신기술이 이룬 산업혁명은 종이 위에 쓰고 그린 전문지식을 소통하고 전달하면서 이뤄졌다. 종이로 만든 지폐가 없었다면 상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불가능했다. 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는 종이에 인쇄한 경전을 통해 전 세계에 포교할 수 있었다. 인도 타지마할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은 종이에 그린 설계도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종교와 예술 등 모든 인간 활동은 종이 위에 세워졌다!

미국 독립은 식민 모국 영국이 1765년 종이에 세금을 매긴 '인지세법'이 도화선이 됐다. 미국 신문들은 반발했다. '뉴욕 가제트'는 "자유와 번영을 지지하고 인지세법에 반대한다"고 분노했다. '펜실베이니아 저널'은 인지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인 1765년 10월 31일자 1면에 묘지와 해골을 그리고 종이에 과세하는 법률을 폐지할 때까지 신문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신문 발행인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10년 후 벌어진 독립전쟁에 참가해 용감하게 싸워 대령까지 진급했다.

전쟁 무기, '위생 혁명'의 주역

종이는 전쟁에서 무기로도 활용됐다. 미국 독립군은 성경책을 뜯어 만든 '종이 탄피'로 영국군과 싸웠다. 하와이 진주만을 습격한 일본은 '종이 열기구'를 만들어 미국 본토를 공격했다. 일본은 1944년 11월 3일부터 1945년 4월 5일까지 약 9000개의 '열기구 폭탄'을 띄웠다. 이 중 1000개가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 오리건 주 자연보호구역인 기어하트 마운틴 인근에 떨어진 열기구에 한 여성과 다섯 자녀가 다가갔다가 모두 사망했다. 종전 후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적의 공격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유일한 장소'라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종이가 역사의 주요 순간을 만들지 않았다면 인류는 문명과 진보를 이룰 수 없었다.

종이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미국 제지업체 킴벌리-클라크가 1920년대 출시한 일회용 티슈 '크리넥스'와 여성용 생리대 '코텍스'는 인류사에 남는 '위생 혁명'이었다. 일회용 화장지는 이질·장티푸스·콜레라 같은 전염병을 급격히 줄이는 데 기여했다. 1860년대 남북전쟁 기간 해마다 병사 1000명 중 80명이 장티푸스에 감염됐지만, 1차대전 때는 1000명 중 3명으로 줄었다. 2차대전 때는 0.1명으로 감소했다. 지금은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손과 항문 사이를 막은 얇은 종이 한 장이 이뤄낸 성과다. 종이 생리대는 여성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생리현상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여성들은 이전에는 금지됐던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역사적 접근뿐 아니라 중국·일본의 전통 제지 공장을 답사하고 미국 달러를 비롯해 전 세계 지폐 용지 생산의 60%를 담당하는 제지업체 크레인 앤 컴퍼니 등을 르포하며 현장감을 더한다.

◇"우리 존재 자체가 종이"

'종이의 역사'가 묵직한 대작 다큐멘터리라면 '페이퍼 엘레지'는 경쾌하고 날렵한 에세이다. '엘레지'는 '애가(哀歌)'라는 뜻. 영국 소설가인 저자는 종이와 관련한 인류 문화사를 조목조목 짚으며 "우리 존재 자체가 종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종이 공책에 필기하고, 종이로 만든 여권을 가지고 여행하고, 종이로 만든 계약서에 서명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저자는 "중요한 일은 모두 종이 위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순 있지만 "그건 죽은 상태나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상상하는 것"이다. 저자가 종이에 바치는 헌사는 '종이와 나무' '종이와 지도' '종이와 책' '종이와 돈' '종이와 건축' '종이와 예술' 등으로 이어진다.

종이는 과연 죽음을 맞고 있는가. 두 책을 읽으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확신이 든다. 한때 이메일과 인터넷 발전으로 '종이 없는 사무실'이 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이미 빗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