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년제 S대학 사회복지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4)씨. 충남에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배려 전형으로 입학했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다. 김씨는 "대학에선 나만 열심히 공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꿈이 깨지기까지 한 달도 안 걸렸다"고 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방세와 생활비가 없었다. 학교 앞 고시원은 가장 저렴한 곳도 월 40만원이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돈을 더 주는 온라인 쇼핑몰 피팅모델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한 달에 90만원을 벌어 방세와 생활비를 해결했다. 그러나 안정적이지 않은 피팅모델 알바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매번 새로운 업체 면접을 봐야 했다. 결국 학점을 포기했다. 일이 있다면 수업도 제치고 달려나갔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장학금을 놓쳤고, 출석 일수를 못 채워 학사경고도 받았다. 악순환이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휴학하고 돈을 벌고 복학했다가 다시 등록금 벌기 위해 휴학하는 것을 3번 반복했다. 2011년엔 고금리 대출에 손을 댔다. 연이율 26%에 빌린 200만원은 3년 만에 500만원으로 불었다. 김씨는 악착같이 버텨 겨우 학점을 올렸지만 4학년이 되면서 다시 좌절했다. 취업을 위해선 학점 말고도 토익 점수, 스피킹 점수, 해외 경험 등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요즘 취업을 위해선 스펙(SPEC·specification: 학점·토익점수 등 취업을 위한 이력)도 있고 스토리도 있어야 하는데 난 스토리만 있다"며 "스펙 없는 내 스토리는 지지리 궁상일 뿐"이라 했다.

우리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기'가 쉽지 않은 구조가 됐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 믿고 대학에 입학한 저소득층, 주거비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지방 출신 학생들은 스튜던트 푸어의 나락으로 더 쉽게 떨어진다. 2012년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대학 등록금 2802만원을 제외하고도 학원 수강료, 영어시험 응시료, 어학연수비 등으로 1467만원을 썼다. 이 돈이 없는 저소득층은 다른 학생들에게 스펙이 밀려 취업이 힘들다.

지방 출신 학생은 주거비 부담이 더해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상경 대학생들의 28.1%만이 기숙사에 산다. 나머지 학생들은 월평균 28만6000원의 주거비를 내고 월세방이나 고시원 등에서 자취나 하숙을 한다. 이 돈은 한 달 생활비에서 35.3%를 차지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는 "취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돼 버렸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는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 학생들은 더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평(6㎡) 남짓한 고시원에 살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스튜던트 푸어’박모(24)씨 뒷 모습(위). 짐을 풀어 놓을 공간이 없어 책상 밑에 상자째 쌓아둔 채 지낸다. 책은 침대 위에 쌓여 있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옷가지들은 벽과 의자 위에 걸려 있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경남 밀양 출신 박모(24)씨도 지난 2월부터 서울 마포구의 6㎡(약 1.8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월 28만원을 주고 생활한다. 지난 학기까지 기숙사에서 살았지만 이번 학기는 추첨에서 떨어졌다. 기숙사에서 쓰던 물건들은 풀어놓을 공간이 없어 라면 박스에 담아 방 안에 층층이 쌓아놨다. 기숙사에서 나오니 주거비 등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휴학하고 기업체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부모님께 더 이상 손 벌릴 수도 없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 1년 정도 돈을 번 뒤 공부에 올인하려 한다"고 했다.

2005년 농어촌 지역 특별전형으로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한 충남 홍성 출신 백모(27)씨도 "한 해 농사를 지어야 그나마 돈이 생기는 부모님은 당장 목돈도 없을뿐더러 매달 방세로만 30만원을 날린다는 게 너무 아까워 월세 15만원짜리인 지하방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선배·동기와 옷을 함께 사 번갈아가며 입었다. 주말이면 결혼식장에서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10만원을 벌어 다음 일주일을 살았다. 백씨 역시 "돈이 없으니 이런저런 자격증을 딸 수도, 외국에 나갔다 올 수도 없었다"며 "아르바이트 경험만이 내가 쌓을 수 있는 스펙이었다"고 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희삼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회균형이란 취지로 선발된 학생이 학교에 쉽게 적응하도록 상담·지원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등 애프터서비스 시스템이 있지만, 우리는 사후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대학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지방 출신 학생들을 위해 공부를 하며 생활비 등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학교 측이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