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바티칸시티출입기자단(VAMP)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은 유럽·남미 국가 기자 수백 명이 등록돼 있다. 이 중엔 교황청만 20년 넘게 출입한 이도 있다. 교황청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교황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고,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눈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어떻게 비쳤을까?

1994년부터 교황청을 담당해온 이탈리아 통신사 안사(ANSA)의 베테랑 여기자 지오바나 치리는 "이전의 브라질·중동 때와 비교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동과 몸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한 점이 특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이나 위안부 할머니 면담 등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만남에도 적극적이었던 점을 예로 들었다. 치리 기자는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황의 진심을 더 많이 전하려고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해 이번이 교황과의 31번째 해외 동행이라는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의 알렉세이 부카로프 특파원은 "한국처럼 질서 정연하면서도 놀라운 환대를 보여준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브라질 방문 때는 사람들이 교황이 탄 차를 가로막는 바람에 예정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며 "가톨릭이 국교(國敎)가 아닌 나라가 이처럼 교황을 환대하는 것도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국인 아르헨티나의 일간지 라 나치온 소속으로 그의 전기(傳記)를 쓴 엘리자베타 피케 기자는 "교황이 세월호 유족에 신경을 쓴 것은 개인적 경험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이던 2004년 12월 30일 나이트클럽에서 불이 나 194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이 현재 교황인 베르고글리오 대주교였다.

피케 기자는 "이후에도 교황은 그때가 되면 잊지 않고 추모 미사를 올리고 있다"며 "종교가 사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