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질식사’로 묻힐 뻔했던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이 알려지게 된 데는 사건 당일 부대 내 한 병사의 용기있는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윤 일병이 구급차에 실려 간 뒤 같은 부대의 김모 상병(21)이 가해자 중 한 명으로부터 들은 구타 사실을 부대장에게 알린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 7일 공개된 수사기록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윤 일병이 집단 구타를 당해 의식을 잃고 의료원으로 이송된 지난 4월 6일 오후 5시쯤, 위병소 앞 면회실에서 근무 중이던 김 상병은 “방금 나간 구급차에 누가 실려나갔는지 알아봐라”는 당직 사관의 명령에 따라 의무반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것은 가해자 중 한명인 지모(20) 상병이었고, 그는 윤 일병이 음식을 먹다 질식해 실려갔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6시 20분쯤 김 상병은 식당 근처에서 우연히 지 상병을 마주쳤다. 평소와 달리 불안해하는 그에게 김 상병이 자초지종을 묻자, 지 상병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 나 육군교도소 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냉동식품을 먹다 질식한 거 아니었나”고 되물은 김 상병은 지 상병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었다. 의무병들이 윤 일병을 수차례 폭행하던 중 냉동식품이 기도를 막았고, 몸을 떨고 오줌을 지리자 이 병장이 “꾀부리지 마라. 이 새끼 군기 빠졌네”라면서 더 때렸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전해준 지 상병은 오후 9시 45분쯤 흡연장에 있던 김 상병에게 다가와 “아까 나눈 얘기는 우리 둘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헌병대 수사관이 왔을 때 거짓으로 진술했고, 의무병끼리도 서로 입을 맞췄다는 것이었다.

김 상병은 사실대로 말하라고 설득했지만, 지 상병은 “윤 일병이 이대로 안 깨어나고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며 “사실대로 말하면 (폭행을 주도한) 이 병장에게 맞아 죽을 수 있다. 나도 지금 불안해 죽겠다”고 사정했다.

취침 시간이 됐지만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김 상병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결심한 김 상병은 당직병과 상의한 후 이날 밤 10시 40분쯤 해당 대대의 본부포대장인 김모 대위에게 전화를 걸어 “윤 일병이 쓰러진 것은 선임병들의 폭행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가해자들의 은폐 공작에 의해 단순 질식사로 묻힐 뻔한 폭행 사망 사건이 급반전되는 순간이었다. 제보 이유를 묻는 포대장에게 김 상병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사건 개요를 전해 들은 김 대위는 윤 일병이 쓰러질 당시 함께 있었던 의무병들을 모두 깨워 개인면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을 은폐하기로 입을 맞췄던 이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뗐다. 김 대위는 집단구타가 벌어진 의무실에 천식으로 입실해 있던 김 일병도 따로 불러 면담했다. 김 일병도 처음에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뒤늦게 사실을 털어놨다.

윤 일병 사망 당시 의무실 침대에 누워 있던 김 일병은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인물이었다. 김 일병은 면담에서 “당시 선임들이 윤 일병의 임무 수행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입에 냉동식품을 가득 채운 후 폭행했다”며 “윤 일병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자 선임들은 손가락으로 입에 있는 음식물을 제거하고 구급차에 태웠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일 가해자인 선임들은 헌병대 조사를 받고 내무반으로 돌아와 김 일병에게 “넌 자고 있었던 거다”라고 협박해 입을 막으려고 했다. 김 일병은 “내 일도 아닌데 괜히 말하면 나에게 피해가 올까 봐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목격자 김 일병의 증언도 결국 김 상병이 이 사건의 전말을 제보하고 나서야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김 상병은 이후 ‘보복이 두렵지 않으냐’는 헌병대 수사관의 질문에 “후회는 되지 않는다. 윤 일병과 부모님들이 억울함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상병은 “만약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경우 차후 내 자식이 군에 갔다가 억울한 일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신이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