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IT 신기술을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 출연금을 지원하는 사업과 관련, 특정 IT 업체로부터 10억원대 뇌물을 받은 공공기관 연구원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뇌물 받은 사실을 감추기 위해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만드는가 하면, 뇌물로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해 굴리는 등 호화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문홍성)는 특가법상 뇌물 수수 등 혐의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소속 연구원 김모(38)씨와 선모(40)씨, 인천정보산업진흥원 부장 이모(39)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또 이들에게 뒷돈을 건넨 IT업체 E사의 성모(42) 본부장 등 6명을 뇌물공여 등 혐의로 함께 구속 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부 출연금 종착지가 된 비리 연구원
미래창조과학부는 차세대 신성장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돕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미래부(당시 지식경제부) 산하 공공기관인 NIPA를 통해 민간 기업에 정부 출연금을 지원해왔다. 출연금의 규모는 매년 150억원 안팎으로 작년엔 138억원이었다.
NIPA 사물인터넷 사업팀 책임연구원 김씨는 작년 1월 시작한 사물인터넷 관련 사업을 수주하게 해달라는 E사의 성 본부장(구속)의 부탁을 받았다. 김씨는 E사가 사업을 맡을 수 있도록 자료를 꾸미는 등 편의를 제공했고, 결국 E사는 13억4000만원의 출연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냈다.
김씨는 사업 수주에 대한 대가를 '합법적'으로 받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가족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본부장 성씨는 이 사업의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주는 형식으로 2억원을 김씨의 페이퍼컴퍼니에 보냈고, 김씨는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된 허위 계약서와 허위 세금계산서를 E사에 교부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비로 쓰여야 할 출연금 중 일부가 돌고 돌아 결국 정부기관 연구원 김씨의 '검은 계좌'로 들어간 것이다〈그래픽 참조〉.
E사의 성씨는 전체 받은 출연금 중 11억4000만원을 이처럼 뇌물로 쓰거나, 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공장 증축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 NIPA에서 김씨와 함께 이 사업을 담당하는 수석연구원 선씨(구속)는 성씨와 책임연구원 김씨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김씨가 받은 뇌물 2억원 중 6000만원을 분배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고급 외제차 굴리고… 해외 골프
공공기관 연구원 3명이 이런 방법으로 여러 업체에서 챙긴 뇌물 액수는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15억4000만원이다. 세 연구원은 모두 아우디·재규어·인피니티 등 고급 외제차를 몰았고, 해외로 골프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 사업에 쓰여야 할 정부 출연금이 연구원들의 호화 생활 '보조금'으로 쓰인 격"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비리가 지금까지 쉽게 적발되지 않았던 이유는 사업 자체가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인 데다 전문가가 아닌 감독기관이 위법 행위를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검찰은 이미 지원된 정부 출연금 중 당초의 사업 수행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쓰인 금액을 전액 환수하도록 NIPA에 통보했다. NIPA는 올해 집행한 5억4000만원을 이미 환수했으며, 지난해에 집행한 나머지 8억원에 대해서도 추가로 환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