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핵심적 국가 역량의 원천이며, 국민의 과학적 소양은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을 강조하고 있고, 중국도 최근 과학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추세를 무시하고 유독 한국만 과학교육을 경시해서 과학기술 한국의 꿈이 제대로 살아날까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현 정부 출범 일년 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과학기술인들이 거는 기대가 무너져가는 느낌을 갖는 대표적인 사안 몇 가지를 들어보자.

첫 번째로 교육부는 고등학생에게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에 대한 소양을 키우기 위하여 모든 학생에게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취지는 환영할 만하지만 교육부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의 안에 의하면 과학교육 시간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이는 사실상 이과를 폐지하고 문과로 통합하는 교육과정으로 보이며 시대착오적인 잘못된 구상이다. 이 안대로라면 필수교과에서 과학과목의 비중은 2009년 15.1%에서 10.8%까지 떨어지게 되며, 이렇게 되면 국민의 과학적 소양을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증가 폭이 갈수록 줄어 내년에는 역대 최저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 R&D 예산은 작년에 17.7조원이었고 내년에는 18.3조원으로, 증가율은 3%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증가율을 보면 2010∼2014년에 11.0%, 8.7%, 7.6%, 7.0%, 3.4%로 계속 하락하다가 내년에는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내년도 물가상승률이 3% 정도라고 가정하면 내년 R&D 예산은 동결되는 셈이다.

세 번째로 21세기 과학기술 중심의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컴퓨터 교육이 필수적인 국민 소양인데도 컴퓨터 교육이 몹시 약화되었다. 1980∼90년대에는 컴퓨터 배우기 붐이 일어났고, 컴퓨터 교육이 인기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1997년 교육부 고시에서 컴퓨터의 '도구적 활용'을 강조하면서 프로그래밍 코딩 교육이 통째로 빠졌고, 오늘날 학교 현장의 컴퓨터 교육은 구색 맞추기로 전락하여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고등학교의 '정보 및 정보과학' 교과가 일반과목에서 심화과목으로 이관 편성되면서 일반학교에서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3일 미래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실현 전략'을 발표하면서 내년 중학교 입학생부터 학교에서 소프트웨어를 필수로 배우게 하겠다고 하였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성공을 거두기에는 교사 양성, 교재 준비, 하드웨어 준비 등 갈 길이 멀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기능의 점진적 약화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과학기술부가 존재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였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로 되면서 과학기술이 현안이 많은 교육 부문에 밀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현 정부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되면서 과학기술이 정보통신과 방송에 밀려 제 기능을 충분히 다 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과학입국' '기술자립'을 선언하면서 산업화에 성공한 것을 본받아 이제 '제2의 과학기술입국(立國)'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여야 한다. 이 길만이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다. 과학문화를 확산시켜 재난·재해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에 동북아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500만 과학기술인이 자긍심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하게 하기 위해서도 지금은 과학기술 한국의 꿈을 다시 살려나가는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