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밀입국해 거리에서 음식을 팔아 생활하는 루시 카브레라는 온두라스에 남겨두고 온 아들과 딸의 전화를 받고는 화들짝 놀랐다. 눈물 범벅이 된 아이들은 "갱들이 납치하겠다고 위협한다"며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카브레라는 즉시 6000달러를 빌려 밀입국 브로커에게 보냈다. 두 달 만에 아이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애리조나주(州)의 억류 시설에서 전화했고, 곧 엄마 품으로 넘겨졌다. 카브레라의 아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과테말라의 작은 마을 산호세 라스 플로레스에서 미국 시카고의 형을 찾아 떠났던 15세의 힐베르토 라모스처럼 길에서 죽는 아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라모스는 국경 검문소를 불과 1.6㎞ 앞두고 텍사스 사막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지난달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미성년자 10여명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미국 당국에 붙잡힌 모습.

미국 보건후생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미성년자 밀입국은 한 해 평균 6775명이었다. 2012년엔 1만3625명으로 배가 됐고, 지난해에는 2만4668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6만명이 국경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 국경 수비대는 2015년 15만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 400명에 이르는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 출신 청소년들이 목숨을 걸고 '나 홀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것이다.

중미권 어린이들이 미국행을 택하는 것은 불안한 국내 정세가 원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갱단 가입과 인신매매를 강요받는 현실에서 아이들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아이들이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으면 하고 바라는 심리도 있다. 온두라스에서 십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앨리스 고도이는 세 차례 시도 끝에 두 달 전 딸을 밀입국시켰다. 워싱턴 DC에 사는 그는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려는 게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느냐"고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갑자기 학교에서 늘어나고, 보건소에서 줄 서서 치료받는 현실이 탐탁지 않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을 불법 이민자들이 이용한다는 인식이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다. '이민의 나라'답게 미국은 그동안 밀입국 문제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지만, 미성년자 밀입국이 매년 2배씩 증가하자 최근에는 반발 기류도 뚜렷하다. 국경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겹치면서 최근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하고 있다"는 응답이 56%로 "잘 대응하고 있다"(28%)의 배에 이르렀다.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자 당장 민주당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11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민개혁법 이슈를 통해 11월 중간선거와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재미'를 보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심각성을 인식한 오바마 대통령은 25일 오토 페레스 과테말라, 살바도르 산체스세렌 엘살바도르,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과 백악관 회동을 갖기로 했다. 6개월 전 국민 관심도에서 9위에 불과했던 '이민'이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17%)로 떠오르자, 오바마도 적극적으로 해법 모색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부인이 히스패닉계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최근 생각을 바꿨다. 한때 그는 가족을 위한 '사랑의 행위'라며 밀입국을 옹호했다. 공화당에서도 이민 정책에 유화적인 편에 속했지만, 최근 그는 "성과 관련한 인신매매를 피해야 하거나 진짜 망명이 필요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밀입국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글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