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이·팔 평화를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시몬 페레스(91) 현 대통령이 사실상 유고(有故) 상태에 빠져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이스라엘 내부의 강경 일변도 분위기에 온건파 대통령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말이고 이스라엘이 총리제 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이다. 페레스 대통령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로로 꼽힌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21일로 2주째를 맞았다.

시몬 페레스(가운데) 이스라엘 대통령이 1994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는 모습.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슬로 평화 협정을 이끌어냈다. 양옆에 공동 수상자였던 야세르 아라파트(왼쪽)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서 있다.

페레스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다음 날인 18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전화 통화에서 확전에 대한 경계와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얘기했지만, 당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오히려 확전을 염두에 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페레스 대통령은 통화에서 "우리는 가자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며 "작전이 오래 지속되지 않길 바란다. 이스라엘군 역시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단히 주의하고 있다는 걸 교황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상당한 정도의 지상전 확대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들도 "이번 작전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해주기로 한 오슬로 협정 당시 이스라엘 외무장관이었던 페레스 대통령은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현직 세계 지도자 중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은 페레스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뿐이다. 27일 7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페레스 대통령은 지난달 교황 초청으로 바티칸에서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평화기원 기도회까지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