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 쇳소리만 들리던 이곳에 언제부턴가 노랫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간간이 서투른 한국어도 들린다. 다국적 이주민으로 구성된 극단 '샐러드'가 이곳에 이십 평 남짓 연습실을 꾸려놓고 공연을 준비 중이다. 몽골·필리핀·키르기스스탄·중국·미국 국적의 결혼 이주여성과 유학생 단원 8명이 활동하고 있다. 배우도, 무대감독도, 연출도 모두 이들이 맡는다.

"영화를 배우러 독일로 유학을 갔었죠. 거기서 차별받다 보니 자연스레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귀국해서 2005년 다문화가정 직원만으로 만든 게 '샐러드'예요. 샐러드처럼 여럿이 함께 어우러지자는 뜻이죠. 그땐 '다문화'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이었지요."

다문화극단 샐러드 단원들이 뮤지컬 ‘수크라이’ 리허설을 위해 모였다. 왼쪽부터 안 내시(필리핀), 마거릿 김(미국), 로나 드 마테오(필리핀), 박경주 대표, 오로나(몽골), 발데즈 마 글라이자(필리핀), 란치엔화(중국).

박경주(46) 샐러드 대표는 방송으로 시작해 연극과 뮤지컬로 밟을 넓혔다. 현재는 극단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설립 10년 만인 지난 5월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도 인정받았다. 그 기념으로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창작 뮤지컬 '수크라이'를 공연했다. 관객으로는 주로 다문화가족과 소외계층이 초청됐다.

시나리오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박 대표가 직접 썼다. 다문화가정 2세인 경희(배우 오로나)가 같은 반 진주(배우 안 내시)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결국 화해하는 내용이다. 연출은 필리핀 출신인 로나 드 마테오(35)씨가 맡았다. "다문화가정 얘기를 다루는 것 같아도 결국 왕따같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는 거죠. 좀처럼 사과할 줄 모르는 사회 분위기도 지적하고 싶었고요." 극에선 필리핀 노래를 부르며 경희·진주, 그리고 그 어머니들까지 한데 어울린다.

극단 '샐러드' 운영은 순탄하지 않았다. 단원 대부분이 결혼 이주여성이기에 직장생활 하는 주부의 어려움은 물론, 이주민에 대한 편견도 넘어서야 했다. 단원들 남편이 찾아와 박 대표에게 으름장을 놓은 적도 많다. 연기 교육을 받지 못한 단원들을 겨우겨우 훈련시켜 무대에 올릴 즈음 애를 키우러, 혹은 공장으로 돈 벌러 떠나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주여성의 경력단절 현상도 심각해요. 남편들이 처음엔 '취미'라고 생각하고 지지하다가도 지방 공연이 잦거나 밤늦게까지 리허설하면 싫은 소리를 하죠. 남편과 밤새 싸우고 퉁퉁 부은 눈으로도 연습실에 나올 정도로 열정 있는 단원들만 남았어요."

'샐러드'의 연습은 보통 극단의 서너 배가 걸린다. 한국어·영어·타갈로그어 등을 혼용해가며 소통하기 때문이다. 공연 전 적어도 한 달 이상 매일 연습실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한다. 공연당 5차례 이상 전국의 주요 다문화학교를 돌며 무료 공연도 연다. "배우들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객석의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은 자기 엄마를 떠올리는지 울기도 해요."

박 대표는 "또 하나의 큰 벽은 '아마추어일 것'이라는 편견"이라고 했다. 연출·시나리오·기술지원은 모두 한국인이 하고, 배우들만 다문화를 상징하는 '얼굴마담'으로 무대에 오른다고 여긴다는 것. 하지만 무대나 조명 다 이주민 단원이 맡는다. 그동안 거쳐간 외국인은 50여명. 초기에는 연기만 했지만 요즘은 익숙해져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

샐러드에서 4년째 배우 겸 연출자로 활동해온 마테오씨는 "다문화 출신은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지 않아 때로 애 취급을 받지만 한 번 연극을 보고 나면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는 더듬거려도 대본은 다들 술술 외우고, 그래선지 관객이 받는 감동도 배 이상인 것 같다"며 "우리들 얘기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