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前 기획재정부 장관

세계는 지금 수출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유사 이래 가장 뜨거운 통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달러를 헬리콥터로 뿌리겠다던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이 현실이 됐고, 일본은 무제한 엔화를 찍어내며, 유럽연합(EU)도 유로를 마구 쏟아낸다. 중국과 브라질 등도 참전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예금에 이자를 주지 않고 보관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통화전쟁이 얼마나 격렬한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에 '잃어버린 10년'을 안겨줬던 지난 시절의 통화전쟁과는 당사국의 숫자와 규모가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13개월째 금리를 동결했다. 기준금리의 인상을 예고했던 이주열 총재는 "현재 금리 수준은 경기 회복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급격한 환율 변동은 부정적 영향이 크다. 환율 변동도 금리 정책으로 대응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금리 인상 예고는 방향 착오이고, 현재의 금리 수준은 경기 회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 급격한 원화 가치 절상은 부정적 영향이 크다. 환율에 대한 금리 대응은 전 세계가 하고 있다. 그런데도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한 중앙은행의 상황 인식이 놀랍다.

금리 인상은 논리 이전에 주요 선진국의 제로 금리를 생각해보면 잘못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최근 세계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낮춰 잡은 것을 생각하면 금리 인하가 옳은 방향이다. 1%대 물가를 감안하면 6%에 달하는 최근의 급격한 원화 가치 절상은 앞으로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줄 것이다. 절상률에 기준금리(2.5%)를 합쳐 8%가 넘는 원화 금융시장의 기대수익률은 해외 단기자본을 유인하여 원화 가치를 더 절상시키고 우리 경제를 어렵게 몰고 갈 수 있다. 부도 위험 없이 3%에 근접한 우리 국고채는 제로 금리의 외국계 자금에 아시아의 노다지나 다름없다.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은 그 이전에 높은 기대수익률을 노린 해외 단기자금의 급격한 유입에 의한 원화 절상이었다.

지금 수출과 경상수지가 좋은 것은 1년 전 금리와 환율에 의한 것이다. 이런 시차에 대한 착시가 굳어지면 선진국에 확실히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일본의 경이적인 성장은 30여년 지속된 엔화의 저평가와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의한 급격한 엔화 절상에도 수출과 경상수지에 상당기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장기간의 경상수지 흑자에 의한 기술 개발이 버팀목이 됐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불과 5년 흑자를 유지했고, 독자 기술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에서 환율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외환위기에서 경험했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 이하, 금융비용이 1% 전후로 떨어진 지금의 금리는 실물 경기보다 금융 시장에 영향이 크다. 해외 단기자금 유출입과 환율을 매개변수로 한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지난해 증권시장의 순자본유입액은 8조원이었는데 올해는 5월 말에 4조원을 넘어섰다. 우리의 대외 균형은 달러에 대한 원화와 엔화의 상대 환율이 1대10(10배)을 벗어나면 빠르게 무너졌다. 지금 1대10이 무너졌다.

금리 당국은 고금리 유지로 세계의 통화전쟁에서 나 홀로 거꾸로 가고 고립되지 않기를 바란다. 환율 당국은 우리가 자본수출국이 되었다는 점과 2010년 G20(주요 20개국) 서울정상회의에서 우리가 주장해 온 환율 개입을 허용하기로 정상들이 합의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용기를 갖고 해외 단기자본의 유입에 의한 환율 하락을 막아내기 바란다. 금리도 있고, 외환건전성 부담금도 있고 수단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