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1일 헌법 9조에 대한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키로 최종 결정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기 나라가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이나 밀접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함께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유엔 헌장은 이 집단적 자위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일본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이 일본의 교전권(交戰權)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헌법 9조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일본은 지난 20세기(世紀) 아시아와 세계를 대형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전범국(戰犯國)이다. 그랬던 일본이 패전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국내적·국제적으로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명이 필요했다. 그것을 담은 것이 일본의 현행 헌법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유보해 온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아베 정권은 역대 일본 정부가 단단히 걸어뒀던 이 전쟁으로 가는 문(門)의 빗장을 풀어 버렸다. 그 방식도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는 개헌(改憲)이 여의치 않자 헌법 해석의 변경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다수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960년대 안보 투쟁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아베의 관저를 둘러싸고 저항 시위에 나섰다. 아베 내각이 이런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집단적 자위권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꿔 놓기 위해서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의 등장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지난 반세기 이상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 세력 균형을 유지시켜온 주요한 축(軸)이었다. 일본이 이 틀을 뒤흔드는 현상 변경에 나서려면 국내적으로 일본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국제적으로는 침략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이 둘을 다 무시한 채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꿔 놓으려고 폭주(暴走)를 거듭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안보 부담을 동맹국과 나눠 지고 싶어하는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는 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본은 과거에도 세계 주요 국가와의 동맹을 바탕으로 전쟁에 나섰던 전력을 갖고 있다. 아베는 태평양전쟁의 전범(戰犯)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면서도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이중성을 보여왔다. 일제가 침략 전쟁을 하면서 저질렀던 만행들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의 뜻을 밝힌 과거 정권의 담화와 발표까지 부인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베 정권이다. 미국 역시 이런 일본의 속내를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까지 용인할 태세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이고 안보 환경이다. 동아시아 정세는 갈수록 예측 불허의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미·중 대(大)각축이 상수로 자리 잡은 가운데 일본은 군사 수단까지 손에 쥐었고, 북한은 언제든 핵·미사일 도발에 기대려 할 것이다. 중·일 간 충돌이 일상화되고 군비(軍備) 경쟁도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는 이런 대형 안보 변수(變數)에 제대로 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에도 한국이 왜 그토록 '아베의 일본'에 대해 우려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 주변 강국의 움직임을 쫓아만 다니는 즉흥적 외교를 뛰어넘는 전략과 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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