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잠 쫓는 약'까지 먹어가며 입시 공부했던 시기가 있었다.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르던 1950~1960년대 이야기다. 6학년 어린이들이 코피 쏟으며 밤을 새우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1967년 보건사회부가 서울 8개 초등학교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6학년생의 20%가 '나이트 스루'등 10여종의 각성제(覺醒劑)를 상용(常用)하고 있었다(조선일보 1967년 10월 31일자). 정확히 말하면, '내 아이를 꼭 일류 중학에 넣겠다'는, 극성맞은 일부 학부형들이 자녀들에게 약까지 먹여 가며 공부시킨 것이다.

그런 과열 경쟁의 분위기가 1960년대 광고란에도 엿보인다. 밤샘 공부용 각성제와 학습을 돕는다는 갖가지 약들이 판촉전을 벌였다. 찬바람 불면 막판 '벼락치기' 공부하는 학생들을 겨냥한 잠 쫓는 약 광고가 많이 나타난다. '잠안와 정(錠)'의 광고 제목은 '잠을 쫓고 공부할 수 있는 약'이다. '카페나'라는 각성제의 광고도 하품하는 남학생 사진 위에 "아! 졸려…"라는 카피를 얹었다. 각성제의 주 소비층이 학생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1960년 1월 18일자, 1962년 11월 15일자).

부엉이를‘광고 모델’로 내세운 각성제 광고. 초등학교 어린이들까지 시험 공부하며 잠을 쫓으려고 약을 먹었다(조선일보 1963년 1월 23일자).

머리를 좋아지게 해준다는 약들도 등장했다. 독일산 '도노포스환'은 '뇌신경 영양 강장제'라며 '우수한 시험 성적으로 승리를 기(期)하기 위하여!'라는 구호로 광고했고, '세다뽕'은 '9세 어린이부터 중·고등학생 이상의 시험공부 시 복용하라'고 했다(1956년 2월 22일자, 1958년 2월 27일자). '감마론'은 '이 약을 먹으면 지능지수(IQ)와 학업 성적이 상승한다'고 허풍을 떨었다(1962년 8월 24일자). 심지어 '입학시험에서 겁을 없애는 약'도 나왔다(1962년 2월 5일자).

빗나간 입시 경쟁이 어린 학생들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시대였다. 중학 입시가 다가오자 부모가 기대하는 학교에 못 들어갈 것을 두려워한 6학년 어린이 셋이 자기 집 금품을 훔쳐 집단 가출하고, 입시에 낙방한 초등학교 여학생 2명이 음독하는 사건까지 터졌다(조선일보 1966년 11월 27일자, 경향신문 1966년 12월 17일자).

경쟁의 첫 관문인 중학 입시는 고교·대학 입시보다 열기가 더 뜨거웠다. 입시 문제의 정답 논란 끝에 학부모들이 소송을 벌인 1965학년도의 '무즙 파동'이나 1968학년도의 '창칼 파동'이 모두 중학 입시를 둘러싸고 터졌다. 마침내 1968년 7월 15일 중학 무시험 진학 제도가 전격 발표되면서 '고사리손들의 입시 공부'시대는 막을 내렸다.